2008년 충남도가 경북도와 공조한 사례가 있다. '도청이전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다. 특별법은 신청사 건립 등 도청이전에 소요되는 예산을 국비로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 골자. 때 마침 경북도도 도청을 대구에서 경북으로 이전하려던 참이었다. 양 도의 공조는 대규모 사업의 재정 부담에 대한 절박감이 1차적 배경이다. 충남도는 경북도와의 공조에 꽤나 공을 들였다. 협약 체결 때는 당시 충남지사였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실국장은 물론 취재단까지 대형 버스에 태우고 경북도청으로 달려가 협약을 맺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안에 지역간 공조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러면서도 이면에는 보다 정치적인 셈법도 없지 않았다. 당시 지역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지원도 절대적이었지만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의 정치력을 얻어 보자는 실리적 계산이 더 컸다. 충청 뿐만 아니라 영남권의 정치력을 더해 특별법 제정을 관철해 보자는 승부수였다. 마침 그 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고 영남권의 정치적 위세는 한마디로 기세등등했다. 경북이 지역구인 모 초선 의원이 한 해 2000억 원대의 예산을 끌어 온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충남도는 협약을 맺은 이후에도 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을 찾아 다니며 특별법 당위론을 설명하고 지원을 당부하느라 애를 썼다.

그러고 보면 충청은 정치력이라는 명제에서 약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국비 확보라는 명제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게 사실이다. 정부 예산은 늘 영남과 호남이 쥐락펴락하는 게 현실이었다. 한 해 수십 조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국회 예결위원장 자리만 해도 충청권은 늘 소외지역이었다. 16대부터 18대 국회의 예결위원장은 늘 영남과 호남이 독식하다시피 양분해 가져갔다. 모두 15차례 예결위원장이 선임되는 동안 충청권 국회의원은 2002년 딱 한 번 예결위원장 자리에 앉아 봤다.

살다 보면 웃는 날도 오는 법인가. 최근 충청권 정치적 위상은 6년 전 충남도가 경북도로 쫓아가 협약을 맺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이완구 대표는 죽은 자식을 살려 내듯이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열외로 제쳐 두었던 제2서해안고속도로(평택-부여-익산)의 기본설계비 50억원을 확보해 냈다. 과거 충남도가 이런 예산을 따 내려면 도지사가 기재부와 국회를 제 집 드나들듯 하며 엄청난 공을 들여도 성사되기 어려웠다. 홍문표 국회 예결위원장도 전액 미반영된 서해선 복선전철(홍성-송산) 사업비 300억원을 정부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한다. 두 사업 모두 지역구와 관련된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정치력으로는 수 십억원 짜리 사업 예산도 반영시키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고 보면 가히 격세지감이다.

분명 호기이다. 국회에는 충청권 다선 의원이 즐비하고 원내 주요 상임위에도 충청권 의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전무후무하고 '충청권 전성시대'라는 말이 들어 맞는다. 그동안 고군분투에도 찬밥신세였던 '국비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길 기대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딱한 사정도 있다. 대전시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빌미가 돼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이유야 어떻든 113억원이 삭감된 것은 국비 확보의 호기에서 터진 일이라 시민들 입장에선 아쉽고 답답한 노릇일 수 밖에 없다. 충청인의 권익과 수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재정의 내실 있는 확보이다. 특히 대형사업의 경우는 더욱 절박하다.

18일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 충청권 성적은 일단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주요 현안의 신규 반영과 증액 부문에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본 게임'이다. 예산 국회에서 충청권의 정치력을 가동할 차례이다. 시·도 간의 보이지 않는 이기주의나 여야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예산 국회에서 한껏 위상이 높아진 충청의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국회 파행이 국비 확보의 변수나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경계심을 가져야 하겠다. 이번에는 지금껏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모두가 충청권을 부러워 하는, 그런 국비 확보의 장이 되길 기대하는 게 무리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편집부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