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어제 오전 국회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방을 찾아갔다가 얼굴도 못보고 되돌아 나왔다고 한다. 두 사람 간에 사전약속이 안 돼 있었고 때 마침 박 대표는 그 시각에 다른 방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중이어서 직접대면이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 방문 사실을 전해들은 박 대표는 "(만나기로) 약속한 적이 없다"며 "왔다 가셨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 모양이다.

박 대표가 정 총리와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정기국회 개회일을 맞아 국회를 찾은 정 총리는 외부 손님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일정이 어긋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설사 사전에 약속이 안 잡힌 상태라 해도 정기국회가 열리는 날, 내각을 이끄는 정 총리의 국회 방문은 필수 일정에 해당한다. 또 과거의 예로 볼 때 총리가 국회에 오면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지도부를 찾고는 했다. 어제 상황도 다를 바 없다면 적절한 시간에 총리가 올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정 총리가 정기국회 일정과 맞물린 국회방문 기회에 야당 지도부를 찾지 않고 돌아갔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잡힐 일이라 할 것이다.

형식논리상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기국회 때든 임시국회 때든 본회의가 열리면 총리와 장관들이 출석하는 게 관행이다. 어제 정 총리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정 총리가 국회에 온다는 얘기는 야당 지도부 방문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내각을 대표해 예의차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보로 해석할 이유가 없고 그렇다면 허탕치고 발걸음을 돌리게 한 측의 마음이 오히려 편치 않을 수 있다.

상대가 야당 원내대표라도 경우에 따라선 '재실중'이라는 전제 아래 찾아갈 수 있다. 방문자가 외빈일 수도 있으며 일반 민원인이라 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재중'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조금 늦더라도 다른 일정을 잠시 유보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정 총리를 헛걸음시킨 것은 도량의 문제로 여겨진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