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어지럼증·마비 증세 호소 공포감 확산

불산누출사고가 일어난 공장 인근 지역 주민인 이미화(64)씨가 불산누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땅콩밭, 케일 등을 가리키고 있다.   전희진 기자
불산누출사고가 일어난 공장 인근 지역 주민인 이미화(64)씨가 불산누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땅콩밭, 케일 등을 가리키고 있다. 전희진 기자
"큰 폭탄을 옆에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불산이 누출된 충남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에 사는 이상학(78)씨는 불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불산에 노출될 경우 5-7년간의 잠복기를 거쳐 병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더 크다.

이씨는 군북면 불산 누출 현장 최초 발견자의 아버지다. 아들은 산에서 벌초를 하다가 공장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하고 신고를 했다. 이씨는 누출 현장에서 400여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어지럼증과 마비 증세를 느꼈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지만 뚜렷한 문제는 발견되지 안았다. 그러나 오랜 잠복을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접하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씨는 "소량의 불산이 누출했기 망정이지, 많은 양이 누출됐다면 금산군 전체에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며 다행스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 했다.

지난 24일 충남 금산의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불산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근 지역인 군북면 조정리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공장 인근 풀과 곡식 잎은 녹아내려 불산 누출사고 현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주민들은 불산이 누출된 회사의 이전을 꾸준히 요구해 왔으며 공장측은 2017년까지 이전하겠다고 합의한 상황이다. 지난 3월에는 주민대책위와 안전 관련 MOU를 체결, 공적으로 증명하는 공증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터지자 공장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문제는 그 동안 인근 마을 주민들은 알지도 못한 채 피해를 입어왔고 앞으로 최소 3년간은 그대로 불산에 노출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은 공장에서 고작 4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해는 조정리로 흐르는 실개천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주민들의 먹거리인 하천 근처 미나리, 달래 등도 먹지 못하게 됐다. 마을의 주 수입원인 깻잎밭도 일부 피해를 입었다. 신체적인 피해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불안감이다. 당장의 증상도 문제지만 고엽제와 같이 몇 년이 흐른 후에 병이 생길까봐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장 인근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 이미화(64·여)씨의 땅콩 300여주와 케일 등도 절반이 녹아내렸다. 11년 전부터 조정리에 살았던 이 씨는 마을 인근에 공장이 들어선 이후 건강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누출한 회사가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불산같이 위험한 물질을 다룬다는 것은 첫 유출사건 이후에나 알게 됐다"며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사고발생 후 보여준 회사와 행정기관의 대처에도 못마땅해 하고 있다. 공장 이전을 제외하고 뾰족한 재발방지 대책도 아직 요원한 상태다. 금산군 관계자는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듯 가장 좋은 방법은 공장을 이전시키는 것"이라며 "주민협의체, 환경청과 공동으로 지속적인 현장 점검을 실시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욱·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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