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정수윤 옮김·정은문고·248쪽·1만3000원

벽을 가득 메운 책장 사이로 벽난로 속 장작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가고, 안락한 의자에 기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그곳. 바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서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이상은 포화상태가 된 책장 옆으로 뽀얀 먼지와 함께 책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순간 참혹한 현실이 된다. 서재를 넘어 집을 서서히 잠식해가는 책은,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이 아니다. 괴로움이다.

책 `장서의 괴로움`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수집한 장서가들의 남모를 고민과 노하우를 다룬 것이다. 저자 역시 3만 권의 책을 보유한 일본 내 손꼽히는 장서가로, 책의 무게를 견디다 못한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책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책이 아무리 많더라도 책장에 꽂아두는 한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듬직한 `지적 조력자`다. 하지만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바닥이며 계단에 쌓이는 순간 융통성 없는 `방해꾼`이 된다. 그러다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범람은 결국 `재해`로 치닫는다.` (19쪽)

그는 책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마저 위협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내면서 장서술의 필요성과 노하우를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필요한 책은 곧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하며, 눈에 보이도록 놓되 절대 박스에 담아 보관해서는 안 된다. 특히 책의 양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헌책시장을 열어 처분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더 큰 책장을 사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방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인 셈이다. 독서법의 변화도 필요하다. 같은 분야를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대신, 꼭 필요한 책 한권만을 숙독한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과연 이상적인 장서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저자는 500권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말한다. 장서치고는 너무 적은 양에 실망한 독자들을 다독이기라도 하듯, 저자는 요시다 겐이치의 말을 빌린다. "책 500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148쪽)

물론 이 괴로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자책이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는 지금 시대에 뒤쳐진 걱정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히려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아도 읽지 않는 책이 한낱 종이뭉치에 불과한 것처럼 찾을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책은 그저 짐일 뿐이다.

마키아벨리의 아버지가 평생 수집한 책이 40권이라는 사실에 굳이 비추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책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책은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는 막연한 다짐과 함께 오늘도 구석에 쌓여가는 책들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전한다. `소유`가 아닌 `내려놓음`의 지혜를. 성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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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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