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천주교 대전교구 공동기획 충청의 순례길을 걷다 6 결산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스스로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약 200여 년 전에 수용된 한국의 천주교는 그 후 100여 년에 걸쳐 집요하고도 혹독한 박해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특히 천주교 전파의 주요 무대였던 충청지역은 '피로 쓰여진 순교 신앙의 중심지'이다. 충청지역의 수 많은 성지에는 모진 박해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 있고 그 성지들을 잇는 순례길은 종교적 성찰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다. 천주교구에서 조성했거나 조성 중인 충청지역의 성지는 모두 22곳으로 이 중 당진 솔뫼성지, 신리성지, 해미성지, 연풍성지 등이 순례길 코스로 이어져 있다. 대전일보가 천주교 대전교구와 공동으로 5차례에 걸쳐 조명한 충청의 천주교 순례길을 결산하며 각 순례길이 지닌 의미와 특징, 명소화를 위한 과제 등을 짚어 본다.

◇한국 천주교 역사의 중심-충청 천주교 성지와 순례길

현재 충청권에 조성된 순례길은 당진 버그내 순례길, 내포지역을 잇는 내포 천주교 순례길, 하부내포 순례길, 충북의 최양업 신부길 등이다. 순례길은 보통 성지와 성지를 잇고 있으며 중간마다 관광지도 포함돼 있다. 특히 충청권 성지와 순례길은 한국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압축시켜 놓은 모양새다. 성인의 탄생지, 신자들의 순교지 등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버그내 순례길, 내포 천주교 순례길, 최양업 신부길 등 조성이 완료된 길에는 중요한 역사를 가진 성지가 다수 포함돼있다.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와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고 있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다. 생가인 대건당을 복원하고 조선으로 건너올 때 타던 배를 형상화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천주교의 첫 사제를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솔뫼성지 다음 코스인 합덕성당은 아산 공세리 성당과 함께 충청도에 처음 세워진 성당이다. 현재는 신 합덕성당이 생겼지만 여전히 신자들에게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신리성지는 가장 큰 규모의 교우촌이다. 마을 사람 400여명이 모두 천주교 신자였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천주교 박해시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성지는 1927년부터 성지 조성이 시작돼 2007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내포 천주교 순례길은 내포문화숲길 사업과 맞물려 조성된 길로 거리가 50㎞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충청 천주교의 못자리인 여사울 성지, 박해시절 신자들의 압송로였던 한티고개, 최대의 순교지 해미성지로 이어져 충청,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코스다.

여사울 성지는 충청 천주교의 아버지 이존창 루도비코 사제의 고향이다. 이존창 사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게 교리를 가르친 사람이다. 이존창 사도와 여사울 마을 공동체는 내포 천주교회의 시작이었다. 내포 천주교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인 해미성지는 다른 순교성지보다도 많은 수의 신자들이 참혹하게 순교한 곳이다. 1000여 명 이상이 순교한 해미는 아직까지도 순교자들의 유해를 완전히 찾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들의 피가 서려있는 곳이다.

이밖에 신학교가 있었던 진천 배티성지와 제천 배론성지, 교우촌이 형성된 부여 삽티고개 등 충청권 성지는 한국 천주교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신자·선교사·순교자의 희생과 헌신으로 쓰여진 역사

현재 조성된 성지는 솔뫼성지와 연풍성지, 여사울 성지 등 성인을 기리는 곳이 많다. 한국 천주교는 자발적 수용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선교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많은 이들의 땀이 배어있다.

신리성지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었던 안토니오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 주교다. 다블뤼 주교는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 교우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교리서 편찬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지만 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수 많은 신자를 살리기 위해 조정에 자수한다. 다블뤼 주교를 따라 오매트르 신부, 루카 위앵, 황석두 루카 등이 함께 순교를 선택한다. 버그내 순례길의 합덕제 둑길은 이들이 순교를 위해 걷던 길이다.

최양업 신부는 충북 진천의 배티성지를 사목의 중심지로 삼았다. 배티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있는 마을이었다. 최 신부는 이 곳에서 집필활동과 신학교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땀의 선교사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지만 중심은 언제나 배티성지였다. 열정적인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과로로 쓰러진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최양업 신부는 현재 제천의 배론성지에 잠들어 있다.

각지에서 사목활동을 했던 선교사들도 중요하지만 이름 없이 스러져간 신자들이야말로 한국 천주교 역사의 주인공이다. 순교 성지는 전국에 있지만 내포 천주교 순례길의 끝에 있는 해미성지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다. 해미에서만 1000여 명 이상의 신자가 순교했는데 대부분이 서민이었다. 순교자들은 대부분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아 신원이 밝혀진 132명 외에는 모두 무명 순교자로 처리돼 있는 실정이다. 묵묵히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은 오늘의 한국 천주교를 탄생시킨 주역 들이다.

◇길은 이어져 있지만 명소화 등 숙제는 산적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충청 순례길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명소로 조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순례길 조성 사업은 교황이 방한하기 전부터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관할 천주교 교구가 직접 조성한 길도 있다. 몇몇 지자체는 천주교 신자와 교구가 기존에 조성해 놓은 길을 교황 방한 이후 본격적으로 정비한다며 이른바 '생색내기'식 행정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재 충청권 순례길은 길마다 완성도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논길이나 숲길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도로를 따라 가는 길도 있다. 때문에 안전과 흥미도 측면에서 다소 아쉽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천주교 관계자들은 이야기가 있는 순례길,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순례길 조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지와 성지, 순례길과 순례길을 단순히 연결한 사업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단순 잇기'식 사업은 순례길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계자들은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야 장기적으로 더 많은 순례객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성역화 작업과 순례길 조성이 미진한 곳에 행정력도 투입해야 한다. 하부내포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례길 사업 추진이 미비했다. 현재 충남도는 순례길과 성지조성 사업을 위해 사전 답사를 하는 등 하부내포지역 성역화를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도의 의지 뿐 아니라 시·군 등 관할 지자체의 협조 역시 필요하다. 교황 방한으로 인한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으려면 관계기관과 교구측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윤종관 부여 만수리성당 신부는 "다행히 도에서 사업 의지를 갖고 추진하게 돼 조만간 하부내포 순례길이 조성될 것 같다"며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곳인 만큼 앞으로도 순례길 조성에 힘을 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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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세리 성당과 함께 충청권 최초의 성당인 합덕성당.
공세리 성당과 함께 충청권 최초의 성당인 합덕성당.
 순례길은 보통 논길과 숲길 등을 가로지르지만 차도를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순례길은 보통 논길과 숲길 등을 가로지르지만 차도를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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