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이후 우리는?… 유흥식 주교에게 듣는다

한국사회는 `표류` 중이다. 풍랑이 아무리 거세도 정해진 좌표를 향해 거침없이 항해하는 기개와 용기, 담대한 리더십은 없다. 급기야 세월호의 침몰로 비극과 상실의 시대가 도래하지만 개혁과 치유의 힘도 미약하다. 공직사회 등 사회 전반에 고질화된 부정부패, 갈등과 혼돈으로 얼룩지고 반성과 성찰이 없는 정치권, 사회 양극화와 청년 실업 등 선순환을 잃어 버린 경제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풍경으로 고착화되는 듯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 희망과 비전을 품어갈 수 있는 위정자와 사회 지도층의 리더십은 요원한 것인가. 때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평화와 화해, 치유와 성찰의 사회적 담론을 확장시켰고 다시금 우리 사회에 있어 보편적 가치로서의 종교적 역할을 주목하게 했다. 대전일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충청지역 대표 종교 지도자인 천주교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성과 성찰, 극복과 대안의 길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충청에서의 3일 간 일정에서 교황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교황 방한에 유 주교께서도 큰 역할을 했는데 아직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있을 것 같다.

"제 자신이 교황님의 방한을 기뻐하고 감격해 한 것은 물론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명을 온 국민에게 주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위로를 받았고 힐링을 체험했다는 언론 보도를 읽었습니다. 모처럼 국민 모두가 감동하는 역사적인 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한국을 통해서 아시아를 보게 됐습니다.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돌아가셨죠. 아시아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아주 뜻 깊은 방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선 충청에 대해서도 매우 감명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각 행사에 참여하시면서 철저한 준비와 환영에 놀라움을 표시했고 특히 충청에 대해선 `좋은 백성들이 아름다운 지역`이라고 감탄하셨습니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여객선 참사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끄집어 낸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슬픔에 잠겨 있는 이 때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월호 참사는 다른 사건과는 다릅니다. 배가 서서히 기울었으므로 민첩하게 협력해 움직였다면 거의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안타까운 수 많은 생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돈 중심, 이기주의, 부정직함,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병폐의 종합판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병폐의 근원에는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짙게 깔려 있음을 보게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인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사회는 점점 더 각 종교에서 신봉하는 가치관에서 멀어져 만 가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저를 포함해 종교인들의 회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종교의 역할은 서로 더불어서 함께 살도록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큰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통해 국민들이 종교의 참 역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종교는 각 종교의 고유의 가르침대로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양극화로 인한 빈부간의 격차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어 우려스럽다. 인간의 존엄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양극화 현상 뒤에 폭력과 전쟁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입니다. 교황님도 방문하셔서 누누이 강조했듯 사회가 행복하게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힘 있고 가진 자들이 봉사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대기업들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기업들이 좀 더 나눔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대 간 괴리감이 깊어지고 갈등이 노정되고 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소통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어른들의 잘못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실은 나쁜 행동들을 어른들이 합니다. 어른들이 각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장기적인 취업난 속에 꿈과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을 잃지 말라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든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언젠가는 기회가 꼭 찾아옵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다가와도 잡을 수 없습니다. 또 일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통일대박론`이 많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해 보인다. 남과 북이 화해를 통해 통일의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통일대박론은 매우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정책으로는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정치적인 구호를 내걸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북한과 서로 대화하고 공존의 길을 찾으려면 상대를 인정해야만 가능합니다.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기 때문에 절대로 정치적 구호로 그치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마음을 갖고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북한에 제안을 할 적에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남북의 화해를 기도하면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마태복음 말씀을 인용하신 의미를 우리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며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실천 지침이 있다면.

"진심으로 믿어줘야 합니다. 신뢰가 있을 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정직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에도 교황이 남긴 메시지에 대한 울림의 진폭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교황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요약하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앞으로 차분히 깊게 하나하나 되새겨야 할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교황님의 많은 말씀 중에 핵심이 `인간 존중`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비극적인 사건의 근본에는 인간 경시 풍조가 깔려있는데 교황님의 방한을 통해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니 많은 이들이 교황을 환호하고 한국사회 전체가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전일보 창간 64주년을 맞아 주교께서 대전일보 독자 여러분과 우리 사회 전반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사회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울 때 방문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오셔서 위로를 해주셨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제 교황님이 한국에서 행한 행동과 남긴 말씀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말하지만 우리 모두 작은 프란치스코가 돼야 합니다. 교황님의 행동이나 말씀이 감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이나 행동이 있으면 그것을 우리들은 앞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분들이 바로 한국의 순교자분들입니다. 그분들은 믿음과 생각이 똑같았던 분들입니다. 때문에 교황님의 말씀과 행동은 다시 `순교자들의 삶을 닮아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았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담=이용 편집부국장 정리=최신웅·사진=빈운용 기자

△ 유흥식 주교는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대건중과 대건고를 졸업한 후 로마 교황청이 세운 라테란대에 유학해 그 곳에서 사제품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대전교구 부교구장을 거쳐 2003년 주교 서품을 받고 2005년 4월 대전교구장에 취임했다. 2007년에 로마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에 피선됐다. 2008년 대전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펼친 도보 성지순례가 종교계는 물론 범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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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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