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제주도의 올레길을 평생의 동반자 아내와 함께 걷고 있는 중이다. 오늘로써 2주일째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며칠을 더 걸을 예정이다. 필자는 오직 올레길 때문에 이렇게 장기간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지만 은퇴를 앞두고서 천천히 올레길을 걸으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선택한 여행이기도 하다.

올레길은 제주도 주위를 26개 구간으로 나눠 짧게는 2시간, 길게는 8시간 정도 걸을 수 있도록 구간을 세분하여 도보여행자가 자유롭게 안내표시를 따라 걷게 만든 길이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신발을 벗고서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오름'이라는 제주 특유의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하며, 마을과 도시의 골목길을 지나면서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인생의 축소판을 다시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아름다운 오름과 바닷길, 그리고 주민들의 땀땀이 느껴지는 돌담들을 보면서 이 올레길을 만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 길을 만드느라고 폭삭 속았수다(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길 곳곳에서 올레길을 만든 이들의 수고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수고와 희생 덕분에 여행자들은 제주의 자연과 제주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면서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고 미래의 삶을 계획하면서 '놀망 쉴망(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가장 반가운 것 중 하나가 나무나 전봇대에 매달려 펄럭이는 긴 리본이다. 올레길이 긴가민가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파란색과 주황색의 리본 두 가닥이다. 길바닥이나 돌담, 전신주 등에 페인트로 그린 파란색과 주황색의 화살표 역시 반갑다. 그리고 갈림길에서는 방향을 알려주는 파란색과 주황색의 나무화살표와 제주의 조랑말을 상징하는 '간세'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올레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처음 걸어가는 사람들은 모르기 마련이다. 이때마다 이러한 방향 표식을 발견하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게 된다.

우리 국민들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이 간혹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은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이때 올레길의 리본같이 미래에 전개될 방향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라도 나타나면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국민들이 피곤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주는 확실한 신호를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제시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신호보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싸우는 모습과 계속되는 사고 소식만 전해 우리를 짜증스럽게 한다.

올레길을 걷다 만난 것 중 눈길을 끈 또 다른 모습은 사유지를 표시하는 돌담들이다. 제주 사람들은 올레길을 가로막는 돌담을 조금 허물고서 그 사이로 올레꾼들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내었다. 자기 영역을 허물어 올레길을 허락해 준 땅 주인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소유자들이 경계를 허문 걷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이렇게 전국을 걷기 열풍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외지인들에 기꺼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갈 수 있게 해 준 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양해가 있어 올레길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소유지를 표시하는 돌담을 허물어 길을 낸 것을 보면서,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휴전선의 철책을 조금이나마 걷어 내고 남과 북을 이어주는 올레길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요즘 남북 지도자들의 언행을 보면, 내 살아생전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 핏줄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날은 과연 오기나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대박 통일 이전에 끊어진 철길과 도로를 이어 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만이라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천천히 올레길을 걷는다. 이규금 목원대학교 금융보험 부동산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정현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