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김한민 감독) 명량

명량해협(鳴梁海峽)이라 불리는 `울돌목`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군 녹진리 사이에 위치한 해협이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치는 소리가 크고 마치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해 울돌목이라고 불린다. 1597년 9월, 울돌목에 이는 거대한 회오리 물결은 마치 남정네들의 서글픈 곡 소리 같았다. 그 물소리에 한 남자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고 그는 억울하게 죽어간 부하들과 백성들을 생각했다. 아직 살아있는 부하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어떻게든 살고자 몸부림쳤고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곧 들이닥칠 왜군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비겁한 왕은 백성을 버린 지 오래였다. 이 고독 앞에서 그는 싸우다 죽기로 맹세했다. 그것이 장수된 자의 도리요, 먼저 죽어간 자들에 대한 의리이기 때문이었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조선을 지킨 한 남자. 이제는 신화로 불리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영웅 이순신 장군이 영화로 부활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

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시종일관 묵직하고 우울하고 비장미가 흐른다. 풍전등화에 놓인 조선 백성들의 비참함을 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하들을 이끌고 싸워야만 하는 이순신의 고독을 그린다. 부하들의 의심과 시해의 위협,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구선(거북선)이 불타는 좌절을 맛보면서도 이순신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장수로서, 백성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할 뿐이다. 이런 그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아들 `회`다. 그는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해 지속적으로 운명을 거부하라 요구하지만 이순신은 그런 아들을 달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이 과정에서 부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 장면을 통해 감독은 이순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그 비결이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법`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는 것. 나중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그 방법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후반부의 공간 배경은 거의 이순신과 150여 명의 부하들이 탄 대장선에 제한된다. 1시간이 넘게 지속되는 액션 장면은 과장을 생략한, 날 것 그대로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이순신의 뛰어난 지략과 전술을 표현하기 위한 장면도 물론 등장하지만 액션 장면의 진가는 백병전에서 드러난다. 화려한 기술 따위는 없다. 어떻게든 앞에 있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살의가 느껴진다. 영화 명량의 가장 큰 미덕은 과감한 생략을 선택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대하드라마의 마지막회를 보는 느낌이다. 잔가지를 모두 쳐내버리고 오직 이순신에게 집중해 기념비적인 역사의 한 순간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최민식의, 최민식에 의한, 최민식을 위한 영화가 `명량`인 것이다. 1대 1 구도로 설정해 팽팽한 긴장감을 예고했던 왜군 수장 구루지마도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보잘 것 없는 조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폼만 잡다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다. 오히려 이순신의 아들 이회가 비중 있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존재감이 크진 않지만 조선 수군 정보원인 임준영 역의 진구와 그의 부인인 정씨 여인 역을 맡은 이정현, 그리고 조선 수군 첩자인 준사 역의 오타니 료헤이 정도만 빛을 발할 뿐이다.

명량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 너무 집중돼 그의 지시를 받고 목숨을 걸고 싸운 수군 병사들이 단순히 전쟁무기 정도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분명 이순신의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전술을 승리로 만들어 준 것은 역사책에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한 힘없는 수군 병사들과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명량은 확실히 일주일 먼저 개봉한 영화 `군도`와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름 없던 민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위대한 위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역사극이란 점 외에 공통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신웅 기자·취재협조=대전 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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