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천주교 대전교구 공동기획 충청의 순례길을 걷다 3 내포 천주교 순례길 上

여사울에서 신리까지 가는 순례길 풍경  전희진 기자
여사울에서 신리까지 가는 순례길 풍경 전희진 기자
`내포 천주교 순례길`은 충남도가 길을 정비하며 만든 이름이다. 버그내 순례길처럼 순례객들이 기존에 찾던 코스를 연결했다. 가까운 성지를 잇는 모양새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담긴 길이 많다.

예산과 당진, 서산으로 이어지는 순례길 코스는 50㎞정도로 매우 길다. 한국 천주교의 시발점인 여사울 성지와 조선 최대 교우촌 신리성지, 박해시절 신자들의 압송로였던 한티고개를 넘어 순교자들이 마지막을 맞이한 해미순교성지로 이어진다.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코스는 여사울 성지에서 신리성지까지, 한티고개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의 길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들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 가진 역사가 남다르다.

하루만에 코스를 걷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긴 만큼 천천히 둘러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포 천주교 순례길`이라 쓰인 팻말을 따라 당시 신자들의 마음으로 걷는다면 더욱 의미있는 도보 여행이 될 것이다.

여사울 성지가 있는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는 주변 풍경이 예쁜 작은 마을이다. 다른 성지처럼 자동차를 수용할 대형 주차장도, 거대한 조형물이나 기념관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공사를 하지도 않는다.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는 매우 조용했다.

여사울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태동을 알린 곳이다. 내포 천주교의 아버지 이존창 루도비코 사도의 고향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가 이존창 사도에게 교리를 받은 것이 사제가 된 계기였다고 전해진다. 이존창 사도와 여사울 마을 공동체가 내포 천주교회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가 이존창 사도에게 교리를 받게 된 것은 신리와 여사울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신리는 육지와 바다가 하루에 두번씩 교차되는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물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 늘어나며 갯벌도 점차 넓어졌는데, 이 때 제방을 쌓아 만든 마을이 신리다. 여사울과 신리 사이엔 삽교천이 흘러 사람들은 이 물길을 통해 왕래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물길 대신 둑길을 통해 순례길을 걷는다.

박해시절 신리 사람들은 관아를 피해 가까운 여사울로 몸을 숨겼다. 물길 덕분에 육안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라 선교사들이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었다. 난리가 잦아들면 다시 돌아가곤 했다. 여사울이 신리를 되살려주는 기능을 한 것이다. 여사울 공동체는 이존창 사도 이후 지금까지 소멸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여사울 성지 윤인규 신부는 "김대건 신부와 이존창 사도가 친척관계였고 여사울 사람들도 신리 쪽에 농사를 도우러 갔다"며 "여사울과 신리는 영농이나 혼인, 종교적으로 굉장히 밀접한 관계"라고 말했다.

여사울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로 빠져 나가는 곳에 순례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한적한 논길을 걷다 보면 삽교천이 흐른다. 삽교천의 `삽`은 백제어로 붉다는 뜻이다. 물이 불면 흙탕물이 흘러 붉은 색으로 변하는데 이날도 붉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중년의 낚시꾼이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입질을 기다린다.

삽교를 따라 둑을 계속 걷다 낯익은 장소를 발견한다. 신리성지다. 서울의 한 성당에서 순례를 온 중·고등학생 수 십 명이 보인다. 가족단위 순례객들도 적지 않다. 한 순례객은 성지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듯 경당 앞에 멈춰 기도를 올렸다.

신리성지를 빠져 나오면 한티고개까지 25㎞에 달하는 긴 코스를 걸어야 한다. 이 코스에는 천주교 성지가 많은 편이 아니다. 성지 코스 한 곳과 다른 코스를 잇는 길이기에 지루할 수도 있다. 길도 험하다. 풀섶이 우거진 거친 길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곳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걷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의미를 두면 의외로 걷는 맛이 좋은 길이기도 하다. 만남을 통해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기나긴 여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미순교성지 백성수 신부는 "순례는 단순히 어디를 다녀 오는 것이 아닌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이라며 "인생 전체가 순례라는 의미를 갖고 도보순례를 다니면 보다 뜻 깊은 순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희진 기자

◇ 내포 천주교 순례길

△코스거리-약 50㎞

△소요시간-도보로 약 20시간

△주요 경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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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형도구인 ‘자리개돌’.(왼쪽) 신자의 팔다리를 잡고 돌판위에 내리쳤다고 전해진다. 한티고개는 고갯길이기 때문에 산길을 걸어야 한다.  전희진 기자
신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형도구인 ‘자리개돌’.(왼쪽) 신자의 팔다리를 잡고 돌판위에 내리쳤다고 전해진다. 한티고개는 고갯길이기 때문에 산길을 걸어야 한다. 전희진 기자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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