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예맥을 찾아서] 대전시무형문화재 제10호 단청장 기능보유자 이 정 오 씨

"오방색을 사용하는 단청에는 우리 민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조화의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표현한 단청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죠."

단청이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색을 배색해 건물의 벽, 기둥, 서까래, 도리, 천장 등 건조물이나 공예품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넣어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현란한 색채를 뽐내며 건축물을 곱게 단장하는 단청의 목적은 장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물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고 목재의 표면이 갈라지거나 썩는 것을 막아 수명을 연장하고 거친 표면을 감추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단청이란

불교의 교리와 이념을 표현하는 단청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며 종교미술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예전에는 단청에 종사하는 사람을 화사·화원·화공·도채장이라 불렀으며 승려인 경우에는 특별히 금어, 또는 화승으로 불렀다.

단청장 이정오는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단청계 최대 계파의 수장인 故 일섭 스님(前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서 단청 기능을 전수받아 1974년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기술자) 시험에 26살의 나이로 최연소 합격하게 된다.

이후 전통문양 및 기법 계승과 더불어 스승인 일섭 스님의 특장인 금문양 및 주위문양의 발전과 `이명중 영조법식`의 `채화작도 문양`을 참고한 신문양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남다른 기능 수준을 지니게 됐다.

작품으로는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이 있다. 최신웅 기자

도움말=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

2000년 10월 31일 대전무형문화재 제10호 단청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정오(68)씨는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청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가 고향은 대구입니다. 대구에서 20년, 서울에서 20년, 그리고 대전에서 한 30여 년 살아오고 있죠. 제 조부가 세운 대구의 장안사에서 어렸을 적 부모님 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절이 제 놀이터이자 집이었죠. 그 절에서 단청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죠. 그 절에 어느 날 前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故 김일섭 스님이 잠시 기거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금오 스님, 보응 스님으로 이어지던 금강산파의 수장이셨는데 단청계 최대 계파라고 할 수 있었죠. 그분은 하루종일 무언가를 그리셨는데 마당에서 유심히 자신의 붓질을 바라보고 있는 제가 마음에 드셨었나봐요. `단청을 그려보고 싶니?` 이렇게 물어보시길래 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하고 대답했죠."

그후 그는 故 김일섭 스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시작은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스승 곁에서 빨래도 하고 군불도 때고 잠자리도 봐드리면서 습작에 몰두했다. 처음 얼마간은 단청을 색칠하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단청의 기초는 붓으로 그리는 습화에서 시작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3000장이 넘는 습화를 반복해서 그렸다.

그후 15살 때 대구의 염불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첫 현장체험을 가게되고 20살에 공군에 입대해서도 국립민속박물관 단청 작업 등 그는 단청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운명의 길을 누구보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걸어가게 된다. 전역을 하고 1974년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 시험에 만 26살의 나이로 최연소 합격을 하게 된다.

"제가 하고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은 그때 스승님의 체취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죠. 그때의 일들은 평생 단청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 지금까지 숱한 문화재 보수작업에 참여하면서 문화재 수리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게 된 것도 모두 스승님이 남기고 간 숨결과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죠."

이씨는 단청은 내세에서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단청의 작은 문양 하나가 뭐 그리 대수롭겠냐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 작은 문양 속에 부처님의 큰 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도 기술이지만, 붓을 잡는 마음이 항상 정갈하고 겸허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문화재 보수 역시 외관을 지킨다는 차원보다 그 안에 깃든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씨는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다.

"처음 단청할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색상의 비례를 잘 맞춰 가칠을 하고 잘 마르면, 문양을 선택해 종이에 그린 다음 무늬에 따라 바늘로 가는 구멍을 뚫는데 이를 천초라고 합니다. 그것을 가칠 바탕에 대고 흰 호분(조개가루) 주머니를 두들겨 초안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채색이 시작되죠. 청·적·황·백·흑의 5색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색을 서로 배합하면 15-16가지의 색상이 나옵니다. 우선 첫 채색인 초채를 하고 흑선과 백선으로 문양의 경계를 나타내는데 색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5-6번은 해야 제 색이 나오죠. 그러다 보니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리는 일도 예사라고 할 수 있죠."

마흔 즈음에 절친한 친구가 대전 동춘당과 우암사적공원의 보수를 맡게 되자, 그를 돕기 위해 대전에 내려와 아예 정착을 해버린 이씨는 이제 대전이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전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별나다. 이곳에서 무형문화재 지정도 받았고 개인 작업실도 열었으며 대전시 무형문화재연합회 회장으로 무형문화재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대전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는 전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과 전통나래관 개관에 힘을 쏟은 일이다.

"대전은 전통문화의 불모지라는 표현들을 사람들이 예전에는 쉽게 말하고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비록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형문화재전수회관과 전통나래관이 대전에 있다는 것은 전통문화 발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앞으로 이 건물의 제대로 된 활용과 시민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도록 하는 일은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앞으로도 단청을 비롯한 전통문화 보존·전승에 조금이라도 앞장 서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에 부끄럽지 않은 길이며 또 후손들을 위한 마지막 헌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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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무형문화재 제10호 단청장 기능보유자 이정오씨가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 제공
대전무형문화재 제10호 단청장 기능보유자 이정오씨가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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