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윤종빈 감독 군도 민란의 시대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화가 아닌 일단 심장이 뛰는 영화. 그것이 `군도:민란의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 제작 노트를 통해 밝힌 말이다. 확실히 오프닝 시퀀스부터 심장이 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인서트 장면들의 나열과 복고풍의 내레이션, 그리고 뒤이어 뛰어난 지략으로 탐관오리를 멋지게 응징한 뒤 말을 타고 본거지로 돌아가는 지리산 의적떼 `추설`의 모습은 강렬하다. 그런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이 두근거림은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어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물론 표절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의 장면, 음악, 편집을 분명 한 번 정도 경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떠오른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B급 정서가 영화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무거운 주제지만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 만도 않게 말초적 감성을 자극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 즉, 이성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한 조선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이 돼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인 추설이 지리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잦은 자연재해, 기근과 관의 횡포까지 겹쳐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는 사이, 나주 대부호의 서자이자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 조윤(강동원)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해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소, 돼지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던 천한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죽어도 잊지 못할 끔찍한 일을 당한 뒤 추설에 합류해 새로운 거성 도치로 거듭난다. 망할 세상을 뒤집기 위해,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향해 도치를 필두로 한 추설은 백성의 적, 조윤과 한 판 승부를 시작하는데….

영화는 일단 왕실이나 지배층 내부의 권력다툼을 주로 다뤘던 우리가 흔히 보던 영화 속의 조선이 아닌, 백성의 시각, 민초의 시각에서 그려내는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어 반갑다.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다뤄졌던 역사극은 거의 지배층의 권력을 둘러싼 모략과 음모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지탱하고 움직여갔던 것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다. 때문에 감독의 이와 같은 시각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화는 조선 후기 철종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극이라는 느낌보다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표방한 액션 활극의 느낌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도치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절대고수 조윤에게서는 강호를 파란만장하게 누비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인 무협의 향기가, 그리고 쌍권총 대신 쌍칼을 휘두르고 장총 대신 긴 장검을 휘두르며 유연하게 구사하는 모습에서는 총이 아닌 칼의 웨스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듯 서양 액션의 원형인 웨스턴과 동양 액션의 뿌리에 자리잡은 무협, 이질적이면서도 닮은 두 장르의 원형적 재미가 활극의 이름 아래 공존하는 영화는 조선이라는 배경과 충돌하는 듯 하면서도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며, 웨스턴 풍의 배경 음악을 더해 오락영화의 진수를 선보인다.

또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초까지 실존했던 의적떼인 지리산 추설의 영상화는 한 인물에 초점을 둘 수 없는 만큼 멀티 캐스팅을 통해 다양한 액션을 선보인다. 특히 조윤이 선보이는 검술은 우리나라 액션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영화는 도치와 조윤의 일 대 일의 대결에 함몰되는 양상을 보여 매력적인 여러 등장인물들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단점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조윤에 대한 감독의 각별한 사랑이 지나치다고 할까? 사연 없는 악당은 없다지만 조윤의 과거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것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고만다. 거기에 지루하게 반복되는 설명조의 내레이션도 작품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영화의 미장센도 기존 역사극에서는 보지 못했던 현실감이 느껴진다. 특히 고통받는 백성들의 초췌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담은 미술과 분장은 어느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모습으로 전라도 나주의 적토(赤土), 특산물 배를 이용한 염색, 질그릇과도 같은 투박함과 같은 모티브는 그대로 `민초의 힘이 느껴지는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의 명장면은 대나무 밭에서 최후를 맞는 조윤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의 철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는 이 한 장면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는 미물처럼 여겨지지만 뭉치면 그 무엇보다 힘이 센 민초들의 응징. 극장에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신웅 기자

취재협조=대전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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