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무슨 색이 나올까? 회색이다. 나는 회색이 멋진 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분법적 사고가 심해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서는 회색에 부정적인 의미를 붙이는 때가 많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회색은 타협과 절충의 색이기도 하다`. 출간 당시에는 간과했지만 세월호 정국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회색론`이 여러모로 관심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발해 충남지사직을 던진 뒤 2011년 자전적 에세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펴내며 재기를 모색했다. 불의의 병마로 총선 출마를 접으면서 정계에서 한걸음 물러났고, `회색론`은 잠시 잊혀졌지만 새정치의 지향점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강(强) 대 강(强)의 만남으로 이목을 끈 지난 5월 여야 신임 원내대표 첫 공식회동의 화제는 단연 `회색`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 원내대표께서 회색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제가 오늘 회색 옷을 입고 왔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는 "다음 회의 때 박 원내대표께서 좋아하는 컬러로 맞추겠다"는 화답으로 돌아왔다. 둘은 `세월호`라는 벼랑 끝 대치 국면에서 팥빙수 회동을 갖는가 하면 정례 회동을 이끌어내는 결실을 거뒀다. 또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여야 원내지도부 청와대 회동을 일궈냈다. `소신`과 `역할`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과거 원내대표와는 한 차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내대표의 핵심 역할을 여야 소통으로 볼 때 성공적인 무대를 합작하고 있는 셈이다.

원내대표가 아닌 정치인 이완구로서는 어떨까. 사실 집권당 원내대표는 `원내 사령탑`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당 전반을 관장하는 대표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국정의 동반자로서 청와대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 원내대표는 최근 행보의 방점을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 같은 `민생`에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야권과의 스킨십 강화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은 `원내(院內`)를 중요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장최고위원회의 참석을 놓고 불거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 18일 7·30 재·보궐선거 지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한 걸 놓고 여의도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와 신경전을 벌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등 현안이 많아 원내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실제로 비슷한 시각 국회 안전행정위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원내대표라면 주요 법안의 처리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타당하지만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막을 수 없었다.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서청원 후보를 크게 따돌린 뒤 이 원내대표에게 쏠리는 과부하를 어떻게 극복할 지도 관심이다.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이후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의 지명철회를 놓고 이 원내대표의 건의를 수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쏟아졌다. 벌써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친박(친박근혜)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나온다. `원내대표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정치적 계산이 깊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 원내대표로선 어떤 해석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생래적으로 `내일`을 염두에 두기보다 `오늘`에 올인하고, 정치적 몸 불리기나 줄세우기를 거부하는 이 원내대표에게 딜레마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그는 총선 불출마와 지사직 사퇴, 투병 같은 고비를 여러 차례 이겨냈다. 이런 정치 역정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청와대와 여권 내부의 복잡한 기류와 권력구조는 그에게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 지켜보게 한다. 이 원내대표는 `약속을… `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회색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야권과 `회색의 정치`로 `접점`을 찾아가는 건 이미 본 그대로다. `회색`에서 국가와 충청의 이익을 조화시키고, 이념·지역·세대·계층 같은 갈등 조정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결국 관건은 새누리당 내부에 회색 정치 문화를 착근시키느냐 여부다. 정치인 이완구의 행보와 돌파력이 주목된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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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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