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사회로의 유혹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이광조 옮김 후마니타스·336쪽·1만 7000원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판옵티콘(Panopticon)' 이라는 원형감옥 개념을 고안했다. 완벽한 원형으로 지어진 이 감옥은 감방마다 내부에 위치한 감시탑으로 향하는 창이 있다. 감시탑은 내부를 어둡게 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반면, 감방은 환한 조명으로 인해 감시가 용이하다. 이런 구조 때문에 죄수들은 항상 감시받고 있지만 언제 감시를 당하는지, 심지어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버린다.

오늘날 우리 또한 절대적 감시체계에 살고 있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달한 교통과 통신은 이를 더욱 공고히 뒷받침했다.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는 우리의 모든 움직임은 CCTV나 전산망을 통해 시스템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일상의 감시는 절대 권력자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등장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되었고, 무분별한 정보 수집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억압과 통제로 대변되는 감시가 오히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감시는 '1984'의 전체주의 사회나 자본가들의 음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사회를 '감시사회'라고 명명한다. 과거 국가나 정부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감시활동은 이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분야를 막론하고 영향을 미친다.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 운전자의 신원조회를 통해 그가 불법 체류자임을 파악 할 수 있는가 하면, 회사는 범죄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감시의 과정에는 개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 현금 인출 카드로 은행에서 쉽게 예금을 찾고, 회원가입을 통해 손쉽게 인터넷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감시 시스템이 제공하는 편익을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감시의 부정적인 측면을 편리함과 속도를 누리는 대신 치러야 할 대가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시의 '다른 얼굴'이란, 사회적·경제적 분할을 강화하고 행위자의 선택과 욕망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며, 나아가 사람들을 제약하고 통제하는 감시의 역할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시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 그것 때문에 영향을 받거나 신원 확인처럼 성가시더라도 별로 해가 되지 않아 보일 때에는 그냥 따르곤 한다." (15쪽)

저자는 이러한 감시 능력의 확장을 근대성의 한 측면으로 분석한다. 근대사회 독립적인 개인의 등장은 참정권을 위시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 수집의 강화로 이어졌고, 통제를 더욱 손쉽게 했다. 더 나아가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된 감시 기술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을 분류·선별하고 차별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자동화' 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감시사회의 부정적인 면에만 매몰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감시 기술이 생활의 편리함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긍정적인 면 또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시 시스템을 바람직하지 않고 회피해야 할 미래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감시 시스템에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감시 시스템을 바람직하고 가능한 미래라는 긍정적인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28쪽)

무분별한 감시 속에서 사회 정의와 윤리, 그리고 개인의 존엄성은 크게 위축 되었다. 분명 이러한 모순들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임에 틀림 없지만, 오늘날 감시가 사회의 '억압과 유지'라는 큰 틀을 지탱하는 토대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001년 출간된 책이지만, 현재 우리의 감시 사회를 되돌아보기에 부족한 점이 없다. 성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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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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