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그리고 2012년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시행되고 근자에 들어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말들이 거의 모든 매체들을 통해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사회적경제를 표방하거나 이를 주장하는 집단들 사이에서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어떤 합의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회적경제라고 하는 개념이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 오기도 했고, 또 유사한 개념들과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인간을 도구화하는 자본의 문제가 등장했고, 또한 임금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와 빈곤으로 인한 비인간화의 고통 등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주류 경제학은 어떻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었지 민중의 고통과 그것을 치유할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탄생하게 된 사회적 경제는 필연적으로 자본이 가지는 야만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고, 인간의 삶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를 포괄해야만 하는 당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들로 사회적경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80-90년대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오히려 경제적인 종속과 소득의 양극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반세계화 혹은 다른 세계화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회적경제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사회적경제를 통해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환경이 파괴되고 극단적인 불평등이 자행되는 현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력한 추진으로 인해 대다수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하게 되었고 소득의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산업혁명 이후 사회적경제가 대두되었던 19세기 초의 서유럽의 상황과 아주 흡사하게 닮아 있고 또한 전 세계가 국민의 불평등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 현실과도 부합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제 위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고, 사회적경제는 유럽과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적경제, 연대의 경제, 민중경제라는 이름으로 국가경제정책의 일부 혹은 전부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심각한 소득의 양극화와 불평등, 점증하는 고용불안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충하는 이해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그 합의의 내용은 경쟁을 통해 무엇을 이루겠다는 경쟁의 가치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살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정치의 문제로 귀결되는 문제이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서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견제와 정책 제안, 그리고 사회적경제의 추진이 더욱 절실하다.

현재 사회취약계층의 고용과 사회서비스 시장의 확충 등을 목표로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있고, 기획재정부는 협동조합을, 안전행정부는 마을기업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각 부처의 칸막이 행정,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실적 확대 등 산적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소득 양극화, 고용불안,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경제는 유의미한 정책적 대안이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경제는 반드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이 되어야 한다.

이윤기 충남사회경제 네트워크 이사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