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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무명순교자 배출 박해속 선교활동 모태

2014-06-19기사 편집 2014-06-19 06: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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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12 홍주 순교 성지·청양 다락골 성지

첨부사진1홍주 순교성지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신자까지 포함하면 총 700여 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져지고 있으며 신원이 확인된 순교자로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성지이다. 사진=천주교대전교구 제공

◇홍주(홍성)순교성지 = 홍주 순교성지는 기록상으로 212명의 순교자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신자까지 거의 700여 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가 많은 곳이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순교사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더욱 그 종교적·역사적 의의를 더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특징은 예비 신자들의 모범 성지라는 점이다. 홍주 성지는 예비신자들이 모범적으로 열심 수계하며 순교했다는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천주교에 입교해 3년간 예비자로서 수계하며 복음을 선포한 원시장 베드로가 신해박해 때 옥에서 세례를 받고 동사로 순교했다. 그리고 장장 22년간이라는 예비자 생활을 하며 거의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다, 순교하기 직전 자기가 자신의 머리에 물을 붓고 하느님을 영접한 이여삼 바오로가 예비 신자들의 대표적인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박해 처음부터 끝까지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점이다. 1792년 신해박해 초기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약 80년 동안 지속적으로 순교자들이 탄생한다. 현재 원시장 베드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황일광 시몬 등 4명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시복·시성을 위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특징은 한국 순교사의 거점 성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울에서 권 일신에게 세례를 받은 이존창이 예산 여사울에서 첫 선교를 해 내포고을에 천주교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해박해가 시작되면서 내포의 많은 신자들이 전국으로 피난을 가게 돼 이를 계기로 전국에 복음이 전파 된다. 그럼으로써 홍주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복음전파의 못자리가 된다. 그 증거로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장 주교는 1891년 10월 전국을 8개의 본당으로 나누었는데, 이중 4개 지역이 충청도에 있었고, 그 중 2개 본당이 내포(상부, 하부) 지역에 있었으니 그만큼 신자가 많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홍주는 한국 천주교 신앙의 중심인 내포의 열개 고을을 관할하던 정 3품 관찰사의 주둔지였다. 따라서 내포의 신자들은 체포되어 이 곳 홍주 목에 압송돼 신앙을 증거 하다가 대부분 홍주 옥에서 순교하게 된다. 홍주 옥에서 교수형이나 옥사로 순교한 이들은 모두 113명에 이른다.

이와 같은 역사적 특징으로 인해 홍주 순교성지는 지금도 신앙심이 깊어지지 않은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은혜로운 성지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성지를 찾아 신앙을 키우고 예비 신자들을 봉헌하고 있다.

◇청양 다락골성지 =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 위치한 다락골 성지의 천주교 전파는 1799년 신해박해를 피해 서울에 살던 최양업 신부의 조부 최인주와 그의 모친(내포의 사도 이존창 누이)이 고향인 이곳에 피신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1821년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1805년 탄생하게된다. 또 1839년 기해박해 때 모방 나 신부와 샤스탕 정 신부가 마지막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며 천주교를 전파하다, 앵베르 범 주교의 편지를 받고 홍성 관아에 자진 자수함으로써 조선 교회 교우들을 위해 착한 목자로서 순교를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그 결과 그동안 경주 최씨의 집성촌이었던 이곳은 천주교인들의 교우촌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이 교우촌이 발각 돼 잡혀간 신자들은 홍주(홍성)와 공주 관아에서 하느님을 모른다는 한 마디를 끝내 말하지 않고 치명을 당하게 된다. 그나마 살아남은 교우와 친척들이 그 시체들을 몰래 훔쳐와 다락골에 있는 자신들의 종친묘 한쪽에 가족묘로 황급히 줄을 지어 매장하게 되고 때문에 다락골 성지는 줄무덤 성지로 불리게 된다. 이 곳에는 현재 무명 순교자, 증거자의 묘소 37기(1줄무덤 14기, 2줄무덤 10기, 3줄무덤 13기)와 최양업, 최경환 성인의 탄생지이자 생가터가 보존돼 매년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청양 다락골 출신 순교자들 가운데 신원이 밝혀진 이들은 이여삼 바오로 (?-1812), 최봉한 프란치스코(?-1815), 최해성 요한(1811-1839), 최 비르짓다(1783-1839), 이태권 베드로(1782-1839), 최대종 요셉(1790-1840), 이성례 마리아(1801-1840), 임만억 야고보(?-1868)등 이고 청양출신 순교자들은 이도기 바오로(1798년 순교), 김풍헌 토마스(1801년 순교), 황 바오로(1813년 순교), 김시우 알렉시오(1815년 순교), 김화준 야고보(1816년 순교), 김대권 베드로(1839년 순교), 정화경 안드레아(1840년 순교), 한재권 요셉(1866년 순교), 박 마티아(1866년 순교), 김 에피파노(1866년 순교), 김영서 예로니모(1867년 순교), 김 그레고리오(1868년 순교) 등이 있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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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청양 다락골 성지 줄무덤. 최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