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이즈음 숲은 조금 어정쩡한 시기입니다. 녹음은 한없이 싱그럽지만 봄꽃들이 사라진 공간에 아직은 본격적인 여름꽃들이 제 풍광을 펼쳐내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숲 속 꽃 구경이 좀 심심하다 싶을 즈음 눈길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꽃이 있는데 바로 산딸나무의 꽃입니다.

흰 빛깔 큼직한 꽃송이들이 나무 가득 피어난 모습은 참으로 깨끗하고도 아름다우며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독특한 개성을 가집니다. 산자락에서 절로 자리 잡아 절로 크는 그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지만, 요즈음엔 많이들 심는 덕분에 저희 수목원은 물론 공원에서도 집에서도 더러더러 만나져서 참 반갑습니다.

산딸나무가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을 한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데 그에게 꽃잎이 몇 장이냐고 물으면 모두 자신 있게 넉 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꽃잎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포(苞)라고 하는 식물의 기관의 하나입니다. 원래 산딸나무 꽃은 아주아주 작습니다. 그래서는 숲에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들의 눈에 들기 어려움을 알고 꽃차례를 싸고 있는 식물의 기관인 포가 크게 자라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변신하였지요.

생각해 보니 산딸나무가 참 장합니다. 주변이 너무 풍족해져 버린 이즈음, 내 탓은 없이, 나의 노력은 없이 주변 탓에 갇혀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 너무도 많은데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여건과 환경에 적합하게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 저토록 눈부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운이 좋으면 산딸나무의 흰빛 포 가장자리에 수줍은 듯 분홍빛이 물드는 나무들도 만납니다. 참 소중한 관상자원이 되지요. 더욱 운이 좋으면 가을이 되어 붉은빛으로 물드는 잎새 위로 뭇 생물들의 눈길을 모았던 포들은 다 사라지고, 작은 꽃송이 하나하나 그대로 둥글게 결실하여 딸기처럼 둥근 열매가 달립니다. 이 꽃나무의 이름이 산딸나무인 이유는 그때 알 수 있습니다. 이 숲의 나무들이 가지는 지혜로움이 우리 삶을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갈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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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수목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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