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서 108년만에 반환된 유골 동학관련 단체 예산탓 뒷짐 박물관 지하실에 18년 방치 뒤늦은 안장 준비 안타까워 "

오동나무 상자가 열리고 그분의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문득 현기증이 일었다. 유골은 세상에 대해 무슨 분노의 에너지 같은 기운을 연기처럼 피워내고 있었다. 그것은 120년이 지나도록 식지 않은 혁명의 열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분의 진혼(鎭魂)을 위해 잠깐 염불의식을 가졌다. 5분 정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같이 동행했던 분들이 말하기를 "힘이 빠져 벽에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의식이 끝나고, 그분의 유골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유골에는 일본어로 직접 쓴 붓글씨가 남아 있었다.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 1906년 사토 마사지로로부터" 그분은 갑오동학운동 당시 동학군을 이끌던 최고 수뇌부의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도 침통하면서도 엄중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있었다. 우리는 다 함께 유골에 큰절을 올렸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혁명가에 대한 예우였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에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실의 상자에서 6구의 머리뼈가 발견된 것이었다. 수집 목적은 인종주의적 입장에서 조선민족과 아이누족의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반인권적 처사란 비판에 직면한 홋카이도 대학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5구의 아이누족 유골은 위령탑을 건설하고 아이누족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 그리고 1구의 유골은 사과와 보상조치 없이 한국으로 신속히 반환되었다.

1996년 고국으로 반환된 유골은 처리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안장되지 못했다. 한때 이 유골은 진도의 동학군 장군 박중진의 유골이란 설이 유력했지만, DNA 분석 결과 확인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동학 관련 단체들은 동학군 유골 문제가 이슈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 모른 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분의 유골은 전주역사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서 무관심하게 18년간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그분의 유골이 방치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차라 잘 해결되기만을 마음속으로 고대할 뿐이었다. 막연히 2014년 갑오동학운동 발발 120주년이 되면 무슨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할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2014년이 되어도 사건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관련 단체에서는 2014년 유골 안장을 위해 7억 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좀 분개했다. 동학 농민군의 최고 수뇌부 장군의 유골 안장을 20년간 방치하면서 예산 부족만 탓하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부패한 정부와 탐관오리의 수탈에 항거했던 동학운동의 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5월 19일 나는 직접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다짐으로 전주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유골 확인이 끝나고 전주역사박물관장과 동학 관련 단체에게 나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동학군 장군 유골을 20년간 방치한 행위는 반인권적 처사일 뿐만 아니라 헌법 161조 사체 보관 및 유골 영득에 관한 조항 위반입니다. 조속히 안장 결정하지 않으면 검찰에 형사고발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감사원에 유골 보관은 반인권행위란 취지로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언론에 유골 사진을 공개했다. 동학 관련 단체들은 사건이 커지자 안장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었던 듯하다. 전주역사박물관 측이 특히 해결을 위해 여러 동학 단체들을 설득하고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나는 5월 31일 전봉준 장군의 전주 입성 기념일을 맞아 전주역사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그날 2차 면담에서 이동희 박물관장은 우리의 제안을 수용 금년도 내 해결할 예정이며, 황토현 전적지에 그분의 유골을 안장하기로 정읍시와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20년 전 새 세상을 꿈꾼 혁명가의 슬픈 죽음을 기억하며, 하루빨리 그분의 유골이 영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동학군 장군의 유골을 18년이나 방치한 행위는 우리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혜문스님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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