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폐지론 공직사회 반응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세월호 참사 담화에서 관피아 통로로 지목된 행정고시를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자 공무원 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5급 공채와 민간 경력자 채용을 5대5 수준으로 맞춰가고 궁극적으로는 획일적 선발이 아닌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점진적인 고시 폐지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를 두고 일부는 환영했지만 제도 폐지와 민간경력자 채용의 효율성에는 의문을 내비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시출신인 대전시의 한 고위 공무원은 "5급 고시제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세월호 참사 사고의 원인처럼 매도되는 것이 안타까운 면도 있다"며 "민간 경력자가 공직사회에 들어온다 해도 조직내 장악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우려되는 문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젊고 유능한 인재는 의욕이 높은데다 성과측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면서 "업무 효율성 등에서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 있고, 비리 등은 운영의 문제이지 채용 제도 자체로 보기엔 어렵다"고 덧붙였다.

9급 출신 공무원은 전격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9급 출신인 한 공무원은 "민간 전문가 영입이 나태해진 공직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지방 행정은 고시출신이 이끌어가는 부분보다는 실질적인 업무능력은 담당자들이 뛰어난 부분이 더 크기 때문에 고시제 폐지 방향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9급 출신 충남도의 한 공무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시출신이 많지 않아서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시 철폐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고시 출신들은 쉽게 말하자면 국·영·수를 잘해서 행정고시에 합격된 것이지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보다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대전청사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후속대책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조달청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고시제도는 당초 도입 취지가 고급인력을 수혈하는 통로였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다"면서 "고급인력이 다른 곳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했다. 반면 특허업무를 취급하는 특허청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업무특성상 고시출신과 비고시 출신 간 조직 융화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예외기관으로 분류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1996년부터 도입된 박사급 사무관 채용제도가 어느 정도 안착되면서 고시출신과의 승진비율도 같아졌다는 것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이 제도 도입 후 박사출신 국장이 배출되기도 했다"면서 "고시출신 보다는 박사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큰 동요는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고시제 축소·폐지라는 채용 제도 개혁은 알맹이는 바뀌지 않는 개혁안으로 큰 변화는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수경 충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고시 폐지는 과거 외무고시 폐지 때 거론이 됐었지만 폐지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관료제 내부의 응집력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실제 채용 제도 때문이 아니라 내부 문화적 측면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병리현상이 맞물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공직사회 개혁안으로 `사전 책임`과 `사후 통제`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일정정도의 재량권을 부여해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부여해주고 잘못된 것에는 강력한 통제로 조직 내부의 개혁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상훈·강은선·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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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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