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세계적 순례코스 부상 한국의 ‘카타콤브’

2014-05-08기사 편집 2014-05-08 06:20:51

대전일보 > 기획 > 종합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9 진천 배티성지

첨부사진1진천 배티성지는 순교자들의 굳건한 믿음과 선교정신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한국의 카타콤브’로 알려져 있다. 배티성지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이자 최양업 신부의 성당겸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이 원형대로 복원돼 있다. 작은 사진은 최양업 신부 동상. 오인근 기자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 종들의 피가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넘치는 자비와 당신 팔의 전능을 보이소서. 언제쯤이나 저도 신부님의 그다지도 엄청난 노고와 저의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수난에 부족한 것을 채워, 구원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최양업 신부의 친필서한 중) 충남 청양 출신으로 ‘땀의 순교자’, ‘길위의 사제’ ‘한국의 바오로 사도’로 불리는 우리나라 두번째 천주교 사제 최양업 신부의 땀과 신앙이 어려있고 교리서 ‘천주가사’가 탄생 됐던 충북 진천 배티성지가 세계적 순례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배티성지=충북도 기념물 제150호 진천 배티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 (비밀신앙공동체), 최양업 신부의 땀과 신앙이 어려 있는 곳, 한국 최초의 신학교, 순교자들의 본향 등 네 가지 영성이 서려 있는 순교 성지이다.

충북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어서 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으며 현재 진천에서 배티를 거쳐 안성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 있지만 아직도 인적이나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해 고적함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서쪽으로 안성·용인·서울, 남쪽으로는 목천·공주·전라도, 동쪽으로는 문경 새재를 지나 경상도로 이어져 내륙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각지와 쉽게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신유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 들었으며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 1866년경에는 은골, 삼박골, 정삼이골, 용진골, 절골, 지구머리, 동골, 발래기, 퉁점, 새울, 지장골, 원동, 굴티, 방축골 등 15곳에 달해 ‘한국의 카타콤브(Catacomb·초기 그리스도인의 은신처이자 활동무대였던 지하 공동묘지)’라 불리기도 했다.

특히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사목 활동을 해 왔고 천주교 박해기 순교자 34명을 탄생 시켰으며 주변에 28기의 순교자 무덤이 산재해 있고 윤의병(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 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970년 인근 교우촌과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조사해 경당을 지었고 1977년부터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 순교자묘가 단장됐다.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고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최양업 토마스(1821-1861)=최양업 토마스는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다락골에서 태어났다. 1836년 한국 천주교회 첫 번째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로 유학 했으며 1849년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우리나라 두번째 천주교 사제가 됐다. 귀국한 뒤에는 배티 교우촌을 거점으로 삼아 선교활동에 힘썼다.

특히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없는 산간벽지만을 골라 교우들을 심방하고 성사를 집전하였다. 한 달에 나흘밤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고 밤에 고해성사를 주고, 날이 새기 전 다른 공소로 떠나면서 1년에 120여 개 교우촌 공동체를 찾아 4000여명의 고해를 들었다고 한다. 휴식 기간에는 이웃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하거나 사목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 글을 알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여러 편의 ‘천주가사’를 짓고 최초의 한글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와 한글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도 지었다. 특히 19통의 라틴어 서한(1통은 유실)은 한국교회사 연구에 필수 불가결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처럼 쉬지 않고 활동하다 1861년 경상도 문경에서 과로로 선종하게 된다. 만 40세의 한창 때였고 귀국한 지 11년 6개월만이다. 천주교에서는 '땀의 순교자'로 부르며 기리고 있고 충북발전연구원 ‘2014 충북 역사문화인물’에 선정됐다.

그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프란치스코)은 기해박해(1839) 때 순교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도 남편이 먼저 순교한 뒤 어린 자식들 때문에 잠시 배교했지만 회개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결국 참수됐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맞춰 복자(福者) 또는 성인으로 추대하는 시복시성(諡福諡聖) 청원 대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세계적 순례성지 조성=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50억원, 천주교유지재단이 50억원 등 100억원들 들여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우리나라 가톨릭 순교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순교박해박물관(최양업 신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최양업 신부를 기리기 위한 이 박물관은 연면적 1353㎡ 지상 2층 규모이며 외관은 최 신부와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 유학생 시절 기거했던 기숙사 원형에 가깝게 만들었다. 내부에는 7개 주제별 전시공간을 꾸몄고 최 신부의 일대기와 조선말 순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영상물, 최 신부가 프랑스 신부에게 쓴 라틴어 서한문, 최 신부가 지은 교리서, 조선시대 말 천주가사 한글본, 기도서 등 유물이 전시된다. 최첨단 IT 기술로 최 신부가 걸어온 길을 순례객들이 시각, 청각, 촉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2012년 4월에는 최양업신부기념관도 준공했다. 연면적 980㎡규모의 이 기념관은 성당 양식으로 지어져 순례객 문화 행사장, 신자 피정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창문은 최 신부의 일대기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해 순례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일대에 형성됐던 교우촌 15곳을 연결했던 산길을 중심으로 한 7.5㎞ 규모의 순례길도 준공할 예정이다.

주변에 야외 미사와 공연을 할 수 있는 주제공원과 생거진천 둘레 길과 인근 사찰을 연결해 종교화합을 상징하는 코스도 만들고, 국제 규모의 피정센터도 조성 연간 30만명이 찾는 세계적 순례성지로 만든 다는 구상이다. 진천=오인근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

오인근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