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지천에 꽃이 흐드러지고 햇살은 따사롭고 부드러운데 그 춘흥을 마음으로 감당할 수 없어 생겨난 말이려니 싶습니다.

그런데 4월은 이를 넘어 오래오래 우리의 아픔이 되었으며 상처가 되었습니다. 하나하나씩 진도 앞바다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가슴이 내려앉기도 눈물이 몰아치기도 하며 일련의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억울함과 원통함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보태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더욱 안타깝습니다.

며칠간 생각 끝에 떠올려 놓은 것은 고작 아름답고 붉은 '자란'입니다. 자란은 처음 목포 유달산에서 발견되었지만 지금은 진도와 그 근처의 남쪽 섬에 아주 희귀하게 자라는 야생의 난초입니다.

쭉쭉 뻗은 잎새가 층층이 달리고 그 끝에 꽃분홍빛의 아름다운 꽃이 달립니다. 꽃이 워낙 곱디고울 뿐 아니라 약용으로 아주 긴요하게 쓰이다 보니 혹은 생태가 변하여 자생지에선 거의 사라져버렸는데 아직 남은 드문 자생지의 하나가 바로 진도입니다. 그래서 희귀식물로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식물이지요.

이즈음 자란은 붉은 꽃 봉우리를 올려 피어날 준비에 한창일 것입니다.

그 막막하고 기막힌 바닷가에서 피어나 꽃보다 더 고운 영혼들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아주아주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그리고 숱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아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자란처럼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기적이라는 희망도 품어 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막막하고 춥고 외롭다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헤아릴 수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마음과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 섬들의 숲엔 상록활엽수들이 언제나 푸른 잎을 가지고 그렇게 그렇게 서 있을 것이고요. 자란은 매년 잊지 않고 이때를 기억해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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