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이정호 감독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시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법. 하지만 법은 언젠가부터 시민 위에 군림하거나 특정 시민만을 보호하는 `권력`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많은 선량한 시민들은 사회적 폭력 속에 신음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 처지에 자신의 무능력을 탓 하기만 할 뿐이다. 법이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모든 이들이 수긍할 수 있게 집행되는 상태를 우리들은 `정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극장가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우리 사회 법의 민낯을 관객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려는 광기어린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려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버려진 동네 목욕탕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여중생 수진(이수빈). 아버지 상현(정재영)은 하나뿐인 딸의 죽음 앞에 무력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현에게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그리고 문자 속 주소대로 찾아간 그곳에서, 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딸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철용을 발견한다. 순간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 상현은 또 다른 공범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무작정 그를 찾아 나선다. 한편, 수진이 살인사건의 담당 형사 억관(이성민)은 철용의 살해현장을 본 후, 상현이 범인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회의 정곡을 찌르는 문제제기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사회를 점검하게 만들며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다.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논란이 된 소년법과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살인을 소재로 사법제도에 대한 모순점을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에서 제기한 청소년 범죄의 처벌 수위에 대한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가 또 다른 가해자를 죽이려 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그때부터 부모의 삶 또한 죽은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이 끔찍한 사고의 피해자로 죽게된 상황에서 상현에게 더 이상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딸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들이 아직 무엇이 옳은 지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철부지 고등학생이라 상현의 절망은 더욱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절망이 복수의 광기로 변하는 표면적 동기는 죄책감을 못 느끼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사회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청소년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기성세대들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 정당하다고 세뇌받으며 길러진 아이들. 인간도 그저 하나의 상품과 동일시하게 만든 사회 구조는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는 한 생명을 그저 자신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한 도구로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된 후에도 유행이 지난 스마트폰처럼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해자들을 법은 추상적인 명분과 공권력을 내세워 지키기에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만약 개인에 의해 복수가 정당화 된다면 법이라는 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위기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성세대들의 안간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안간힘 속에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것인지, 상현의 외로운 투쟁은 그 공고한 권력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의 준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방황하는 칼날은 전체 분량을 핸드헬드 방식은 물론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 캐릭터들의 세밀한 내면을 담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를 든든히 받쳐주는 정재영과 이성민의 명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강원도 산 자락,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흰 눈에 덮인 황량한 공간을 담아낸 영상미는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범죄스릴러물이 많이 제작되긴 했지만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스릴러물에 방황하는 칼날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햐안 눈밭에 쓰러져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상현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최신웅 기자

취재협조 = 대전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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