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6 보령 갈매못성지

국내 유일 바닷가 천주교 순교성지인 보령 갈매못성지는 역사·문화·종교가 어우러진 산 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갈매못성지 예수 그리스도상 모습.  사진=보령 갈매못성지 제공
국내 유일 바닷가 천주교 순교성지인 보령 갈매못성지는 역사·문화·종교가 어우러진 산 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갈매못성지 예수 그리스도상 모습. 사진=보령 갈매못성지 제공
그들이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한 구절이다. 충청남도 기념물 188호 `갈매못 순교성지`는 한국 유일의 바닷가 순교성지이자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로 꼽을 만큼 서해안 중요 성지이다. 이곳이 성지가 된 이유는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3월 30일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 위앵 마르티노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및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처형장이기 때문이다.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는 프랑스인으로 1866년 3월 제 5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돼 충남 서부지역 포교에 전념하던 중 황석두 루카와 함께 당진 지방에서 체포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인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와 위앵 마르티노 신부도 더 많은 신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자수했다. 이들은 한양 의금부로 압송돼 가혹한 문초를 받은 뒤 사형이 확정돼 갈매못에서 처형 당했다.

이때 장주기 요셉도 그들과 함께 순교할 것을 결심하고 스스로 죄인 행렬에 참가하여 함께 처형됐다.

이들 순교자들은 처형되는 순간에도 편안한 표정과 단정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이 땅의 천주교 번영을 기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원군이 새남터 대신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택한 이유는 고종이 병을 앓고있는 데다 명성황후와의 국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터라 "장안에 피가 흐르면 국가의 장래가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예언과 이 곳이 당시 천주교 유입의 길목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어 처형을 통해 천주교인에게 본보기를 보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또 1839년 앵베르 범 주교와 모방 나 신부, 사스탕 정 신부를 처형한 것을 항의하려고 외연도를 서울 양화진으로 알고 프랑스 로즈 제독이 왔던 곳이라 서양을 배척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순교한 성인들의 시신은 3일간 전시된 뒤 황석두 루카 시신은 가족들이 거두어 부여 홍산 삽티에 안장했다가 훗날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 고향으로 옮긴 뒤 1982년 8월 25일 연풍성지에 안장했다.

나머지 네 순교자의 시신은 형장의 모래사장에 묻혔다가 6월 초 신자들에 의해 보령시 남포 서짓골(현재 미산면)로 이장됐다. 이후 1882년 블랑 신부의 지시로 발굴되어 일본 나가사키로 옮겨지고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된 후인 1894년 5월 서울 용산 신학교를 거쳐 1900년 서울 명동성당 지하실에 안치됐다. 이후 1960년대에 시성 시복 운동이 전개되면서 1967년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안치됐다. 병인박해 때 국내신도 8000여 명이 처형되었고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었는데 그 중 5명이 갈매못에서 처형된 것이다.

이때 체포되지 않은 프랑스 선교사 3명중 리델 신부가 중국에 있는 프랑스 해군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박해 사실을 알려 병인양요를 초래하게 된다.

갈매못 순교성지 순교성인 5인에 대해서는 1968년 로마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 교황청에서 시복(諡福)되었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은 1984년 5월 6일 서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으로 추대 되었다.

갈매못 순교성지는 1925년 부여 정규량 신부, 공주 최말구 신부, 괴산 윤 바오로 신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발굴하게 되며 1927년부터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1968년 다섯 순교자의 시복과 함께 복자기념비가 세워졌고 대천성당 유영소 신부와 신자들의 노력으로 토지를 구입하게 된다. 1984년 조경과 간선도로 정비되고 1985년 7월 시성비를 제막했다. 1999년 경당과 사제관, 수녀원이 완공됐으며 2006년 10월 31일 `승리의 성모 성당`을 봉헌하게 된다.

갈매못 순교성지에서 순교한 4위가 16년간 묻혔던 보령시 남포 서짓골도 150여년 만에 천주교 순례코스로 조성되고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이곳에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제대석과 순교 기념 현양비를 세웠다. 50여 t의 제대석에는 십자가 모양의 무늬조각과 함께 서짓골 성지에 임시 안장됐던 4명의 순교자 이름이 새겨졌고 35t 규모의 현양비에는 한문으로 `광영위주치명(光榮爲主致命)`이라 쓰여 있다.

갈매못 순교성지는 역사적으로 병인박해때 외에도 많은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순교한 곳 이다. 뿐만 아니라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충남도에서도 도 기념물 188호로 지정했다.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던 이곳은 길도 없어 배를 타고 와야 했지만 지금은 성지로 개발돼 경당 앞 천수만변 도로에 순례 단체가 줄을 잇는다. 자연환경적으로도 천주교 성지 중 한국에서 유일하게 바닷가에 위치한 성지로 경관이 매우 뛰어나 매년 4만에서 5만 명의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갈매못 성지 오명관 베네딕도 신부는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례지가 충남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됨에 따라 역사, 문화, 종교의 통합적인 교의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며 "주변의 충청수영성을 비롯해 역사 문화자원과 연계해 성지 관광 순례코스로 개발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령시도 병인양요의 계기가 된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를 역사·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성역화하고 각종 편익시설을 확충하는 등 순례자들을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보령=최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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