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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337명 박해시대 교회의 심장

2014-04-10기사 편집 2014-04-10 06: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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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5) 공주 황새바위 성지

첨부사진1공주 황새바위 성지는 순교자 337명을 낳은 박해시대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으로 일컬어진다. 사진은 황새바위 성지 전경. 사진=황새바위 순교성지 제공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 - Dallet. C. C. 한국천주교회사 中. 충청남도 기념문화재 제178호인 공주 황새바위 성지는 박해시대 교회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공식적으로 이 곳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만도 337위로 한국 천주교 성지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공주시 왕릉로에 위치해 공산성을 마주보고 자리한 황새바위는 그날의 피눈물을 기억하는지 바람에 벚꽃 잎들이 흩날리며 찬란한 햇빛 속에 마냥 평화로운 모습이다. 공주 감영 또는 우영(右營)에 체포된 교인들은 현 교동성당 인근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이곳에서 처형됐는데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도 이곳에서 참수됐다. 1980년 황새바위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이후 천주교단에서 부지를 매입하였고, 1985년 순교자 248명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을 건립했으며 1984년 이후 성지 담당 신부도 부임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성당, 예수상, 순교탑, 무덤경당, 12개의 빛돌,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공주 황새바위 약사=예로부터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황새바위, 또는 목에 커다란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불린 이곳은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기며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이 된 순교지이다.

당시 공주에는 충정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충청감사)와 감영(현재의 市)이 있었다. 공주 감영에는 세칭 '사학(천주학) 죄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감사의 명령에 따라 황새바위에서 처형당하곤 하였는데 공개적인 처형이 있을 때면, 맞은편 산 위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모양으로 구경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처형된 순교자들의 머리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시키기 위해 나무 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았으며, 시신은 일반 죄수들과 섞인 채 지금보다 훨씬 넓은 황새바위 앞의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을 순교자들의 붉은 피로 물들이곤 하였다.

순교자들은 참수(斬首 : 목을 베어 죽이는 것), 교수(絞首 :목을 옭아매 죽이는 것), 옥사(獄死 :고문이나 벌 때문에 감옥 안에서 죽는 것), 아사(餓死 :굶어 죽는 것), 매질 등으로 죽어 갔는데, 교회사가(敎會史家) 달레(Dallet, Claude Charles)는 공주 감영에서 있었던 교수형에 대해 "옥의 벽에는 위에서부터 한 자 높이 되는 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밧줄을 죄수의 목에 씌우고 벽의 구멍으로 내려 보낸 수 옥 안에서의 신호에 따라 밖에 있던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힘껏 잡아 당겨 죽인 후 시체를 밭에 버렸다"고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구멍이 있는 형구돌이 사용되었는데 구멍에 줄을 넣어 죄수의 목을 옭아맨 다음 반대편에서 줄을 잡아 당겨 죽였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공주에서도 병인박해 당시인 1866년과 그 다음해에 가장 많은 교우들이 희생되었으며, 공주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은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꼬와 10명의 회장들을 비롯해 남녀노소, 신분에 관계없이 무수히 많았다.

공주 감영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순교자들의 이름조차 알수 없었으나, 현재 공식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만도 248위이며, 이들 중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103위 성인품에 오르셨다.

최연장자는 84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성 남종상 요한의 부친, 1866년 1월 옥사)이며 가장 나이 어린 순교자는 10살 밖에 안 되었던 김춘겸의 딸(1866년 4월 교수형) 이었다.

20여 명에 달하는 20세 미만의 어린 교우들과 부녀자들까지도 온갖 고문과 회유, 공포 속에서도 배교하지 않고 순교로써 신앙을 굳게 지켜낸 공주는 순교 역사의 시초부터 기록상 마지막으로 순교자를 낸 1879년까지 100여 년 동안 줄곧 피를 흘리며 신앙을 고백했던 참으로 거룩한 땅이다. 지금도 순교자들의 고결하고 굳건한 신의 숨결이 살아 이곳 황새바위에서 후손들과 함께하고 있다.

◇황새바위의 세 광장=황새바위 성지에는 '몽마르뜨 광장', '순교자 광장', '부활 광장' 등 크게 세 개의 광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 광장은 각자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순교자들의 뜻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성지 주차장에서 성당 앞마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까지를 몽마르뜨 광장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은 일반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몽마르뜨는 프랑스어로 '순교자의 언덕'을 뜻한다. 예수성심상과 카페가 위치해 있어 공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한 번쯤 들르는 명소라고 할 수 있다. 몽마르뜨 광장의 계단을 오르면 돌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 돌문을 지나가면 순교자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마음을 정화하고 기도를 하는 공간으로 돌문의 높이를 150㎝로 만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는 자신을 낮추고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순교자 광장에는 특별한 세 가지의 조형물이 있다. 무덤경당과 순교자의 탑, 그리고 열 두개의 빛 돌이 그 주인공이다. 무덤경당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형상화했다. 순교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아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축가 김원이 디자인한 순교자의 탑은 순교자들이 처형당할 때 사용했던 칼이 서로 맞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두 개의 칼은 순교자들을 처형했던 칼과 그에 대항하는 칼이 서로 맞닿아있는 모습이다. 대항하는 칼은 세상을 향해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아니오 할 것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순교자들의 용기를 상징한다. 또 열 두개의 빛 돌은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를 상징한다.

부활 광장은 황새바위 야외성당이다. 이 곳을 갈 때는 묵상하면서 올라가는 빛의 길 14 처가 마련돼 있다. 또 이곳에는 벡제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성모상이 유명하다. 한 유명 건축가는 이 성모상을 본 후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울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최신웅 기자

도움말=황새바위 순교성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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