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 수리과학硏 수학원리응용센터장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가 오는 8월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다. 수학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ICM을 한국에서 개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박형주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같은 대륙에서 연이어 개최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인도에 이어 우리나라 대회 유치를 이끌어 낸 뒷 이야기와 수학자대회 개최의 의미를 직접 들어봤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면서 우리 젊은 세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선수들과 직접 경기를 치른, 또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본 젊은 선수들은 두려울 게 없어졌죠. 막연한 '세계의 벽'이라는 게 사라진 겁니다.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이 축구를 이해하는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수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박형주 위원장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ICM의 의미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최초의 올림픽이 1896년에 열렸는데 첫 ICM은 이듬해인 1897년에 열렸을 정도로 현존하는 학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 꼽힌다"며 "수학은 수학자끼리 만나는 문화가 특히 오래되고 긴데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결과를 구해야 하는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문제에 부딪히면 다른 수학자와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난관을 넘는, 학회가 일종의 연구실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ICM 개최를 통해 수학계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도 높아지고 젊은 수학자들에게는 도전의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세계적인 학자들과 만나면서 연구의 폭도, 경쟁의 대상을 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수학계에는 '내비어-스톡스 방정식'이나 '리만 가설' 등 수학계의 대표적인 난제로 불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화두가 있는데 우리 젊은 수학자들이 실력이 충분하면서도 그런 문제에 잘 도전을 하지 않는다"며 "'내가 그런 문제에 덤벼봤자 경쟁이 되겠냐'며 스스로 지레 포기하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우리 세계적인 클래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젊은 선수들이 프리미어 리그나 분데스리가 등 세계적인 리그에 잇달아 진출해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며 "젊은 수학자들에게 세계적인 학자들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해서 한 번 겨뤄 볼 만 하다는 자신감, 도전 정신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ICM 유치가 성사되기까지는 치열한 물밑경쟁이 있었다. 통상 같은 대륙에서 두 번 연달아 ICM을 개최하지 않는데 지난 2010 ICM이 인도에서 개최됐기 때문이다. 유치전에는 브라질과 캐나다, 한국이 뛰어들었다. 특히 수학자대회 110여 년의 역사상 한번도 대회를 개최한 적 없던 남미대륙의 브라질이 유력한 경쟁지였다. 그만큼 한국의 ICM유치 성공은 이례적이다. 그 바탕에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후발주자로 출발해 눈부신 질적, 양적 성장을 거둔 우리 수학계의 저력이 큰 힘이 됐다.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도 뒷받침이 됐다. 우선 지난 10년 동안 수학 분야의 논문 수가 2-3배 성장을 보인 브라질과 중국, 우리나라의 원인을 분석했다. 브라질은 1990년 전후 구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연구터전을 잃은 우수한 수학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과학발전에 급격히 투자한 시기였다. 국가연구비를 과감히 늘리고 수학의 기반도 다졌다. 2002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ICM은 중국 수학계 발전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

박 위원장은 "실제 브라질의 수학 논문을 분석해보면 동유럽계 이름이 많이 눈에 띄는데 일종의 이식된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며 "중국의 경우 당시 장쩌민 주석은 2002년 베이징 ICM에서 필즈상을 수여한 뒤에도 3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젊은 수학자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수학이라는 학문의 후발국이었지만 브라질의 이식된 성장이나 중국의 국가적 투자 같은 뚜렷한 배경 없이도 짧은 기간동안 2배 이상의 성장을 이룬 유일한 나라"라며 "'Dreams and Hopes for Late starters'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한국에서의 ICM 개최가 다른 개발도상국의 학자들에게 꿈의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고 말했다. 이번 ICM은 개발도상국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당초 참가인원인 4000여 명에 더해 자비를 들여 개발도상국 학자 1000여 명을 초청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여비를 지원받아서 ICM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1978년에 1명, 1983년에도 겨우 한 명이 참가했을 정도였다"며 "당시 나도 수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돌아온 선배 연구자들로부터 세계 수학계는 어떤 연구를 하는지 전해 듣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또 "우리도 개발도상국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나라인 만큼 이제는 우리가 그런 경험을 다시 어려운 나라에 돌려줄 때가 됐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세계적 학자를 만나고 고국에 돌아가 다시 젊은 학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꿈을 키우고, 그게 그 나라 과학발전의 씨앗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진국 중심의 학회에서 한 발짝 나아가자는 일종의 문제제기가 수학자 연맹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개도국을 대상으로 참가희망자를 모집했는데 1000명 선발에 3608명이 지원했다. 처음에는 인기를 얻기 위한 반짝 아이디어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하던 다른 나라들도 깜짝 놀랄 만큼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는 "참가가 저조할까 다소 걱정했던 우리도 놀랄 정도로 개도국 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며 "910명 정도 참가자를 발표했고 나머지 100여 명은 북한 수학자를 초대하고 싶어 남겨뒀다"고 했다.

또 "사실 북한은 우리보다 먼저 1981년 수학연맹에 가입했고 베이징 ICM 때는 20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열의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이를 위해 남북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북 간 과학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더욱 보람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정연 기자

세계수학자 대회·필즈상은…

세계수학자대회(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는 국제수학연맹(IMU·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주최로 최근 4년간 일어난 중요한 수학적 업적을 평가하고 시상하는, 전 세계 수학자의 축제다. 특히 ICM은 개막식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수학분야의 최고의 영예 필즈상(Fields Medal)을 시상해 더욱 관심을 모은다. 개막식에서 수여되는 필즈상의 수상자는 ICM 개막식 전까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수상자가 될 것인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매년 수상자가 발표되는 노벨상과 달리 필즈상은 4년에 1번, 개최국의 원수가 수여하는 것이 관례다. 지금까지 필즈상을 수상한 사람은 모두 52명이며 노벨상과 달리 수상자를 4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연구자 개인의 업적을 기리며 수상의 영광을 안기는 차원을 넘어 수상 이후에 우수한 연구성과를 냄으로써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필즈상의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박형주 2014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은 1986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미국 U.C. 버클리 에서 수학과 박사를 받았다.

1995년 U.C. 버클리 전자공학과 박사후 과정을 거쳐 1995년 Oakland University(오클랜드 대학)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 2001년에는 Oakland University 수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2004년 국내 순수과학계 최고 연구기관인 KIAS(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를, 2009년부터는 포스텍(POSTECH) 수학과 주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수학원리응용센터장과 2014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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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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