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효창원 골프장을 시작으로 군자리 골프장 시대에 이르며 골프는 일제강점기 사회 지배계층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반면, 일반인들에게는 '베비골프'라는 새로운 형식의 골프가 등장해 인기를 끌게 되었다. 베비골프는 기존 골프와는 달리 퍼팅만으로 경기하기 때문에 경기장을 도심의 작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어 대중들의 접근성과 경제성 면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베비골프는 당시 골프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시작돼 큰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이후 일본에 도입되어 유행했던 신종 레포츠 개념의 골프 경기였다. 문헌상 경성에 베비골프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1년 4월 9일로 구성은 총 18개 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932년 6월 용산철도국이 용산에 베비골프장을 만들었고, 1932년 7월에는 조선인이 인사동에 사동베비골프장을 만들었다. 또한 인천, 전주, 부산 개정면에도 베비골프장이 생겨나며 지방 도시에까지 퍼져 나갔다. 연이어 만들어진 베비골프장은 당시 골프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알 수 있는 척도이며, 당시 경성과 더불어 지방에서도 골프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높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이런 인기는 마땅한 오락 여가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베비골프가 새로운 스포츠와 놀이로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또 남녀가 같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데이트 코스로서 베비골프장은 대중오락시설의 역할과 함께 여성의 스포츠 참여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베비골프는 대중오락시설의 역할뿐만 아니라 골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베비골프는 미니골프라는 이름으로 유원지, 관광지, 리조트 등에 설치돼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여가오락시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조상우의 한국골프 이야기'를 통해 한국 골프의 도입과 발전에 대해 민족주의, 식민지 문화정치의 수단이라는 측면과 사회학적 측면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또 세월 속에 숨겨져 있던 언더우드 목사의 황해도 구미포 골프코스와 원산 갈마반도 외인촌 골프코스에 대해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토대로 한국 골프 역사에서 아직 밝혀지지 못한 부분과 어딘가에 있을 소중한 자료들이 많이 발굴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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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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