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겨울이 가고 있으니 다가올 꽃소식에 마음이 들썩거린다. 이 땅의 수많은 식물들도 땅속에서 겨울눈(冬芽) 속에서 추위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한창 움찔거릴 것이다. 하지만 겨울이 가고 있음이 아쉬운 진정한 겨울 꽃이 있는데 바로 한란(寒蘭)이다. 추운 때에, 사는 곳을 가려 피어나는 고고한 한란. 부드럽게 휘어지는 잎새, 독특한 빛깔로 피어나는 꽃, 너무 굵기도 가늘지도 않으며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한란의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기품, 느껴질 듯 말 듯한 은은한 꽃향기…. 한란은 그 고결함에 절로 마음이 단정해지는 식물이다.

추사 김정희가 1840년 제주에 유배되어 9년 동안 살면서 제주한란을 재배하고 또 난을 즐겨 그리기도 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주한란을 발견하여 알린 장본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너무 희귀해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희귀식물로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으며 한라산 남쪽 상효동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난초는 조직 배양을 통해 대량생산되고 보급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꽃가게에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자생지에서 자연 그대로의 다양한 변이를 혼자 가지려는 탐욕스러운 사람들 탓에 많은 자생지에서 한란이 사라져갔고 지금은 몇 겹의 울타리가 쳐진 천연의 요새와 같은 모습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런 보호의 노력으로 한동안 개체수를 늘려가던 한란이 갑작스럽게 꽃대를 올리다 말고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일들이 발생했다. 희귀식물 연구를 하고 있는 국립수목원이 모니터링을 하던 중에 발견했고 제주도와 문화재청 등이 전문가들까지 모아 연구모임을 만들어 보전 연구와 대책을 마련했다. 국립수목원의 곤충팀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꽃대 속에 파고들어가 겨울을 나는 굴파리류를 찾아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종류여서 한란꽃대굴파리라고 신칭해 현재 학계 보고 중에 있다. 말과 선언이 아닌 진정하게 식물 보전을 해온 산림청, 문화재청 그리고 제주도가 서로서로 힘을 합하여 이 아름답고 고고한 우리의 한란을 지켜내고 있으니 정부 3.0 협업의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일이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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