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정 희 선 원장

마약과 독극물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첫 여성소장, 그리고 2010년 국과수의 연구원 승격 후 초대 원장까지….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34년 간 걸어온 범상치(?) 않은 이력들이다. 그런 그가 2012년 여름 국과수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지난해 9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에 취임했다. 집무실은 대학 캠퍼스로 바뀌었지만 바쁜 일상은 국과수를 이끌던 그 시절 그대로다. 방학 중이지만 법과학 관련 국제기관인 국제법과학회(IAFS)의 회장이자, 국제법독성학회(IAFT) 차기 회장으로 내정돼 있어 크고 작은 각종 해외 일정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절반을 보낸 국과수를 떠나 대학 캠퍼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진행 중인 그의 삶과 비전에 대해 삶의 진솔한 얘기를 곁들여 직접 들어봤다.

정 원장은 78년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함께 약대를 졸업한 동기들은 주로 약국이나 제약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의 관심은 엉뚱했다. 당시만 해도 국과수하면 부검 등 법의학 분야만 떠올리던 시절, 주변의 우려를 마다하고 첫 직장으로 국과수를 선택한 것이다.

"대학 3학년 때 오수창 국과수 소장님이 와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마음을 뺏겼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고 정 원장은 국과수 선택의 배경과 함께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일을 배워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첫 업무는 선배들의 실험기구 닦는 일. `처음이니 그렇겠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생활은 8개월까지 계속됐다. 그때 평생의 멘토이자 동반자인 유영찬 전 국과수 원장을 만났다. 유영찬·정희선 부부는 10년 차이를 두고 각각 국과수의 수장을 지냈다. 특별하고 소중한 이력이다.

조금만 잘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 원장은 "원래 성격이 조금 덤벙대는 성격이어서 처음 일을 배울 때 무섭게 배웠다. 국과수는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이 안되는 곳이다. 쉬운 예로 음주운전의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면 면허정지 0.049%면 훈방조치를 받는다"며 "실험을 통해 나온 1000분의 1%라는 작은 차이를 판단해야 한다. 그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정원장은 덕분에 국내 최초로 소변에서 필로폰 성분을 검출하는 시험법과 모근을 이용한 필로폰 검사법를 개발해 미제로 남을 뻔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 석해균 선장을 쏜 범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유영철·김길태 사건 등은 물론 그룹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 사망사건의 사인을 밝혀내기도 했다.

정 원장은 이 사건에서 총 13만 종의 화학샘플을 분석해 동물 마취제가 사인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사건마다 시급성이 다를 수는 있어도 어떤 사건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일에 매달렸다 "고 말했다.

약독물과장, 마약분석과장, 법과학부장을 거쳐 200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첫 여성 소장에 오른 그는 재임기간 연구소가 `원`으로 승격하며 초대 원장이 됐다.

4년 임기를 채우고 국과수를 떠난 정 원장은 1년 간의 휴식기를 가진 뒤 충남대 분석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하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정 원장은 "대학에서 내가 가진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국과수 재임 중에도 꾸준히 해왔다"며 "국과수 시절 늘 절감했던 부분이 전문인력 부족이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고가의 외국산 장비를 들여와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력이 드물었다. 사용을 못하니 응용해서 분석기술을 향상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과학 수사와 관련된 학부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분야인 약독물 분석과 관련성이 많은 국내 유일의 분석전문가 양성기관에서 연락을 받아 주저 없이 충남대행을 결심한 것이다.

취임 5개월 밖에 안되지만 그는 벌써 자신의 구상을 차근차근 구체화하고 있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약물 중독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병원에서 실험을 통해 원인이 되는 약물을 밝혀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이 점에 착안해 우리가 가진 기술력으로 사회공헌도 하고 학생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역에서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며 "대학에서 일을 하다보니 다른 방향까지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 철저한 전문가 집단인 국과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라고 말했다

대학시절 누군가의 한마디로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달려온 정희선 원장은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꿈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꿈은 커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꿈이 커야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근처까지 갈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서 발휘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대신 꿈을 조금 구체화할 필요는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후, 5년 후, 3년 후, 1년 후까지 내가 준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오정현·사진=빈운용 기자

정희선 원장은…

1955년 충북 충주생. 숙명여대 약대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8년 `금녀의 영역`인 국과수에 들어갔다. 국과수 마약분석과장, 법과학부장, 약독물 과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2010년 8월 국과수 첫 여성 원장으로 임명됐다. 남편 유영찬 박사도 국과수 소장을 지내 `국과수 부부 원장` 기록도 갖고 있다. 마약 복용자 판별 방법을 개발하는 등 마약 수사의 기반을 닦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주는 제10회 비추미 여상대상 별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공동으로 학연 공동지도교수제, 학연 공동교육과정 등 차별화된 교육을 통해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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