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가 국가상징물 중 하나 광복 69주년 불구 작사미상 윤치호·안창호 등 근거 다수 정부, 제자리찾기 노력 필요 "

혹시 애국가 작사가를 아시나요? 만약 안익태 라고 답했다면 틀렸다. 안익태는 애국가의 작곡가이지 작사가는 아니다. 애국가는 광복 69년을 맞는 2014년 현재에도 작가미상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애국가의 작자 확정을 위해 최남선을 위원장으로하는 심의 위원회를 만들어 5명을 심사했다. 관련된 증언과 문헌, 당사자들의 주장 등을 종합한 결과 당시 윤치호 독립협회 회장이 가장 유력한 작가가로 추정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확정하고자 표결을 거쳤으나 11대 2란 결과를 도출했다. 이에 윤치호 작사설은 만장일치가 아니란 이유로 부결, 지금까지 작가 미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윤치호 작사설의 근거는 1908년 윤치호가 역술한 `찬미가`란 책의 14장에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고, 1910년 미주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기사에 애국가 가사가 윤치호 작이란 이름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윤치호 작사설을 부정하는 가장 큰 목소리는 도산 안창호 설이다. 안창호가 작사가라는 주장은 안창호가 선천예배당에서 금식기도를 마친 뒤, 성령의 감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애국가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상해 임정에서 애국가가 국가로 채택될 수 있도록 가장 노력했다는 점, 안창호 주위 사람들의 도산 안창호가 애국가를 지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안창호 작사설은 안타깝게도 문헌적 근거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얼마전 국사편찬위원회의 1955년 애국가 심의 자료집을 살펴보다가 최남선이 `1907년 윤치호 작이 진(眞)이라면 윤씨 작이라 하여도 무방(無妨)할 것이다`라고 기록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구절은 윤치호가 직접 붓으로 쓴 친필본 애국가 가사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친필본 애국가에는 자신이 작사가 임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윤치호는 분명히 애국가를 자신이 작사했다고 문서를 남겨 놓은 부동의 증거인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작사가가 직접 남긴 애국가라면 원본 수준의 엄청난 가치를 갖는 기록물일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윤치호의 친필본 애국가 가사지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치호가 애국가 작가가로 인정받지 못하자 후손들이 1997년 윤치호의 모교인 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에 윤치호 애국가 원본을 기증해 버렸다고 한다.

많은 문헌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윤치호는 왜 정부로부터 애국가 작사가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윤치호가 해방이후 대동아 전쟁에 동참을 호소했던 반민족 친일파의 하나로 규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사실과 윤치호가 반민족친일행위자란 사실은 별개의 사실이 아니었을까? 역시 대표적인 반민족 친일행위자의 한 사람인 박영효가 만든 태극기가 국기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지난해 가을 나는 에모리 대학에 서면으로 애국가 원본을 보고 싶다는 열람신청서를 보냈다. 훼손 우려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에도리는 사진촬영 불허란 조건으로 2014년 1월 30일 원본열람을 허가했다.

애국가는 무궁화, 태극기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 상징물 중의 하나이다. 국가 상징물의 작사가를 고증 가능함에도 무시하는 것은 나태함이라고 생각한다. 애국가 사료를 분석해보면 애국가는 단독의 작사보다는 윤치호, 안창호를 비롯한 다수의 민족지사들이 창작하고 보급했던 민족의 노래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여러 명의 애국가 작사가 중의 하나라면 윤치호 친필본은 당연히 한국에 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란 이유로 애국가 작사가란 사실이 부정되어선 안 되며, 친일파 작사 애국가이기 때문에 작가미상 상태로 남겨 두려고 해서도 안 된다. 더 이상 작사미상의 애국가를 방치할 수 없고, 애국가 작사가의 애국가 친필본이 미국에 있다는 모순된 사실도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해방 70년을 맞는 시점까지 나는 작사미상의 애국가의 작사가를 정부가 확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취지에서 애국가의 제자리 찾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나는 에모리로 간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혜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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