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에게 베토벤이 작곡한 서른 두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크나 큰 의미를 갖는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드디어 베토벤 소나타 중 가장 쉽다는 G장조 소나타를 칠 수 있게 되는 날의 가슴 뿌듯함도 잠깐,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가는 많은 어린 학도들에게는 베토벤의 작품들이 점점 넘지 못할 높은 산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마련이다. 대학에 가고 그의 작품들을 오래 연습하면 할수록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까다롭게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을 구약성서에, 그리고 베토벤의 서른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교하는 것은 물론 그 음악작품의 깊이와 가치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지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연주와 표현방법의 그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도 역시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흔히 베토벤의 서른 두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 28번부터 마지막 32번까지의 작품을 후기 작품으로 분류한다. 특히 마지막 세 작품 즉 30, 31, 32번은 그 내용적 일관성으로 인해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한 음반에 녹음하거나 또는 같은 콘서트에서 연주하곤 한다. 이 세 작품은 말년의 베토벤이 자기 인생의 파란만장했던 역경과 과정들을 정리해 놓은 듯한 음악적 내용을 들려주는데, 그 첫 곡인 30번은 이미 이 한 곡만으로도 베토벤 자신의 삶을 투영해 놓은 듯한 농도 짙은 곡이다.

1악장에서는 서로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두개의 주제가 구사되는데, 마치 기쁨과 비통함, 설렘과 실망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대단히 남성적인 성격의 2악장은 짧지만 확신과 박진감, 빠른 속도로 연주되는 격렬함으로 가득하며, 삼악장에 도달하면 드디어 베토벤은 이러한 인생의 귀결점인 양 너무나 경건한 주제와 여섯 개의 변주를 들려준다. 인간의 고통과 경건한 기도, 또한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투쟁은 정말 듣는 이의 공감을 자아내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가슴 저밈은 곡이 다시 고요히 경건한 처음의 음악을 들려줄 때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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