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불타오르던 나무가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겨울이 오긴 왔나 보다. 마른 가지에 스치는 찬바람이 다시는 새 잎이 돋지 못할 것처럼 매섭지만 이 찬 겨울에도 파란 잎보다 더욱 눈부신 순백의 잎이 가지마다 피어나고 있으니, 바로 눈 덮인 겨울 산속이다.

짧아진 낮의 길이와 귓불을 얼리는 추위는 산행을 어렵게 만들지만 겨울 산에는 자연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먼저, 조용히 내린 눈은 앙상한 가지마다 얌전히 쌓여 하얀 눈꽃을 피워 낸다. 이렇게 핀 눈꽃도 절경이지만 꼭 눈이 온 날이 아니어도 겨울이 만든 섬세하고 황홀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춥고 맑은 날 새벽의 산속은 하얗게 내려 핀 '상고대'가 장관을 이룬다. 상고대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과냉각 상태로 존재하던 물방울이 나무와 같은 물체와 만나 순간적으로 생긴 백색의 얼음 결정이다. 마치 나뭇가지에 하얀 가시가 빼곡하게 돋아난 것처럼 보여 '나무서리'라고도 부르는데, 산속뿐 아니라 저수지나 강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간혹 눈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투명한 상고대도 아닌 투명한 얼음이 나뭇가지를 감싸고 얼어붙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입자가 큰 물방울들이 0도 부근이나 그보다 낮은 온도의 물체에 떨어져 얼어붙은 것으로 '우빙'이라고 부른다. 우빙은 투명하고 균질한 얼음으로 되어 있어 마치 일부러 나뭇가지를 꽂아 얼음을 얼린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이러한 겨울의 명작은 아무 때에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어야 하며, 하루 이틀 전 눈이 온 뒤라면 대기 중 많은 수증기를 머금고 있어 더 아름다운 눈꽃이 피어난다. 해가 뜬 이후에는 금방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상고대와 우빙을 보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 부지런히 채비를 마쳐야 한다.

녹음을 뽐내던 푸른 잎을 떨궈내고 이제는 하얗게 빛나는 얼음꽃을 피워낸 겨울 산, 찬바람과 흰 눈이 발목을 잡아도 꼭 한 번 그 황홀한 광경을 만나고 싶다. 서애숙 <대전지방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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