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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종이학 천 마리

2013-11-27 기사
편집 2013-11-26 20: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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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낯선 분이 교회로 나를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온 방문이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낯선 분이 교회로 목회자를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는 즐거운 방문이 거의 없었기에 나름 경계가 됐다. 그는 차를 운전하고 이곳을 지나가다 교회 건물이 눈에 띄어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비록 남루하게 보여도 대학은 다닌 사람이라고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모습에서 대낮부터 약간 술을 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분은 자기 아들이 그날 아침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는데, 군대 가는 아들과 다퉜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다퉜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기도나 하고 싶어 왔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이 아버지는 교회에 가면 기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난생처음 교회에 발걸음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간 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이 교회를 찾아와 갑자기 기도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자신이 스스로 답을 내놨다. "목사님, 마음만 드리면 되지요?"

그렇다. 기도에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종교마다 나름의 기도 형식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당연히 교회에도 기도의 형식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면 아무리 형식에 잘 맞춰진 기도라고 해도 하나님을 속이는 기도가 될 것이다. 천로역정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존 버니언은 기도할 때 '마음 없는 말보다 말 없는 마음이 낫다'고 했다. 기도는 혀보다 마음의 활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종교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새해가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해맞이 장소로 달려가는 것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싶어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을 위하여 마음의 소원을 빌거나 간구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현대는 발달된 과학기술 위에 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신앙적인 욕구와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실존적인 공허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문학가인 G. K. 체스터턴은 '사창가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남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러나 막연한 목마름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대신 쾌락이나 재물이나 권력으로 그것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은 신앙의 씨 같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그리움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갑자기 밖으로 표출될 때는 자신이 큰 어려움 속에 처하게 되거나 몹시 약해졌을 때이다.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싶어지거나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찾게 된다.

얼마 전에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처음 받는 수술이어서 가족들이 몹시 걱정을 했다. 수술 전날에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과 아들이 내려와 병실에서 함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다음 날 아내가 수술을 받는 동안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두 아이와 함께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렸다. 두세 시간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옆에 함께 앉아 기다리던 두 아이가 그때처럼 든든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두 아이는 옆에서 무엇인가를 말 없이 접고 있었다. 종이학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봐서 몰랐지만 둘은 종이학을 계속 접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접는 종이학에 자신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두 아이는 그런 방식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도하고 영성을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이학을 열심히 접던 아들이 한 달 전에 군대에 입대를 했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정성스럽게 접었던 천 마리 학을 유리 상자에 곱게 넣어 제 엄마의 가슴에 안기고는 말 없이 집을 떠났다. 부모는 군대에 가는 아들 걱정에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군대 가는 아들놈은 제 엄마 때문에 그냥 갈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이 기도하게 한다. 그러나 가까운 가족끼리는 마음에 없는 말로 큰 아픔과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군대 가는 아들과 다투고 나를 찾아왔던 그 아빠도 지금 그 어딘가에서 아들을 위하여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김홍관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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