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퇴근길 주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끼어드는 노란 운전연수차량을 보니 끝없는 교통 정체에 짜증난 마음이 조금 무뎌진다. 지금은 나름 베테랑 운전자가 됐지만 나도 저 병아리 시절 차선이라도 바꾸려면 두 손 가득 핸들을 꽉 잡고 등줄기에는 얼마나 많은 땀이 흘렀던가. 이제 생각하니 그땐 왜 그렇게 운전이 무서웠는지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여전히 운전 중 바짝 긴장할 때가 있으니, 바로 빙판길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비나 눈이 올 때에는 빗방울이 시야를 가리고, 바닥이 미끄러울 것이라는 것을 자연히 인지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간다. 하지만 눈이나 비가 그치고 난 후 도로에도 장애물이 없어 보이고, 날씨도 이미 갠 경우라면 긴장이 풀어져 나도 모르게 방심하게 되는데, 바로 이 순간, 블랙아이스(black ice)라는 위험한 덫에 걸리게 된다.

블랙아이스란, 아스팔트 표면에 있는 작은 틈 사이로 눈과 비가 스며들어 기온이 내려가는 밤이나 새벽에 얼어버리는 현상으로, 까만 아스팔트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보기에는 조금 젖어 있는 도로로 착각하기 쉽다. 이러한 블랙아이스는 햇볕이 잘 안 드는 터널 입출구와 지열이 없는 교각 위, 공기 중에 습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저수지 근처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러한 곳은 일반 도로보다 기온이 평균 5도가량 낮아 쉽게 빙판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빙판이라 하여 '기온이 영상이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블랙아이스는 이미 내린 눈과 비가 어는 것뿐만 아니라, 과냉각 상태의 빗방울이 도로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영상 4도 정도에서도 발생이 가능하고 아스팔트의 온도는 대기에 비해 현저히 낮아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는 영상 7도 정도에서도 블랙아이스가 발생된다고 한다.

올 12월은 평년보다 기온이 낮고 눈·비가 잦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슬슬 본격적인 추위에 시동이 걸리고 있는 요즘, '블랙아이스' 이 다섯 글자를 다시금 머릿속에 새겨 넣고 도로 위에서 아찔한 스핀을 경험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다.

서애숙<대전지방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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