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⑤ 행복물류협동조합 이성천 이사

자활에 성공한 이성천 행복물류산업협동조합 이사와 두 아들. 사진=서구자활센터 제공
자활에 성공한 이성천 행복물류산업협동조합 이사와 두 아들. 사진=서구자활센터 제공
"그 때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의 회유가 없었다면 지금도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살고 있었을 겁니다."

`행복물류산업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행복함을 전달하는 회사다. 정부에서 소외된 이웃이나 어려운 형편의 이웃들을 돕기위해 제공하는 양곡을 집집마다 배달하는 것이 행복물류산업협동조합의 몫이기 때문이다.

행복물류산업협동조합은 서구 자활센터 구성원인 이성천(52) 이사를 비롯해 4명의 자활센터 인원들이 힘을 모아서 지난 2011년 6월 서구자활센터 택배사업단으로 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어엿한 한 회사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성천 이사는 IMF 경제위기를 맞기 전까지 소위 `잘나가는` 건축업자였다. 건축일을 하며 돈도 넉넉하게 벌었고 생활도 불편함이 없었다.

이 이사는 그렇게 모아둔 돈으로 동업자와 함께 환경폐기물 처리 업체를 차렸다.

그는 "그 당시 건설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건축폐기물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환경폐기물 업체가 승승장구할 것으로 여겨졌다"며 "하지만 업체를 차리려고 돈을 모으고 빌리고 하는 동안 나라에 IMF경제위기가 찾아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부분의 건설경기가 무너지는 바람에 이 이사의 야심찬 계획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그간 모아둔 돈과 열정을 쏟아 부었던 터라 그 아픔은 더 컸다.

그는 "IMF가 되고 사업을 시작도 못했는데 빚을 수억 원 지게 됐다"며 "제 1금융권은 담보며, 보증이며 해서 다 막았지만 조금이라도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손을 내밀었던 제2금융권과 사채의 손아귀는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어려움에 빠지자 사업, 가정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움에 허덕였다. 지인의 힘을 빌려 식당을 운영하며 10년 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했지만 식당일을 통해 버는 수익은 모두 10년전 떠 안았던 빚을 갚는데 들어가고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10년간 식당일을 해서 돈을 벌어도 모두 빚 갚는 데만 써야 하니까 일 자체가 질리기 시작했다"며 "신용불량자로 지인의 이름을 빌려 생활해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년 전, 10년간의 식당생활을 접고 일용직을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처음에는 복지과 직원이 와서 자활센터라는 곳에 가보라고 하길래 거길 왜 가야 하냐고 반문했었다"며 "하지만 삼고초려에 가까운 설득으로 마지막 3번째 찾아왔을 때 마지 못해 서구자활센터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은 자활센터에서 그는 희망의 빛을 봤다. 당시 서구자활센터에서 준비하던 택배사업단 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사업단 창설을 준비하는 과정이 이 이사의 적성과도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택배일이라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일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는 것이 적성에 딱 들어 맞았다"며 "열성을 갖고 일을 했더니 지금은 물류차량을 5대나 보유한 든든한 나의 보금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구자활센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때 자활센터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중에 자활센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데, 꼭 자활센터에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며 "상담도 받고 교육도 받으며서 여러가지 사업단에서 일도 배우고 재기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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