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20여 년이다. 유난히도 할아버지를 많이 닮은 나는 할아버지와 30여 년을 함께 살았기에 그리움이 많다. 태어나신 지 100일 만에 아버지(증조부)를 여의고 머슴살이 등으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가문의 밑거름이자 뿌리가 되신 할아버지는 모든 일을 자녀 손들에게 믿고 맡겨 자신감 있게 살게 하셨다.

손자들 잘못이 있으면 엄한 아버지로부터 보호해주셨고, 가족이 늦게 들어오면 대문 밖에 앉아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셨고, 고부 갈등이 있을 땐 살며시 맏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를 위로해주셨단다. 돌아가시기 직전엔 영특한 작은아들(숙부님)에게 "논 팔아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고 숙부님은 지난 추모일에 울먹이시며 말씀하셨는데 이 생각만 나면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에 울컥해진다. 할아버지께서는 황소 한 마리를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우셨는데 그런 황소가 그림책에도 많이 나온다. '황소 아저씨'(길벗어린이)는 마치 우리 할아버지처럼 마음이 늘 따뜻하고 넉넉한 것이 닮았고, '황소와 도깨비'(다림)는 황소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황소의 주인 돌쇠의 마음이 우리 할아버지 같고, '모기와 황소'(길벗어린이)의 황소는 잘 키워 미남 같은 것이 할아버지가 정성껏 키운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참으로 반갑다.

또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로 잔잔하고 진한 감동을 나타내주는 그림책도 여럿 있다. 시골에 살다 도시의 아들네로 살러 오셔서 손자를 사랑해주시는 책인 '할아버지의 안경'(마루벌)과 조손 간 한 편의 감동 드라마 같은 '오른발 왼발'(비룡소), 늘 근심에 싸인 임금님도 웃는 임금님이 되게 만드는 '허허 할아버지'(사계절), 이 허허 할아버지는 우스갯소리도 잘하셔서 많은 이들을 웃겨주신 모습이 꼭 우리 할아버지 같다. 몇 해 전, 가족실태조사에서 우리 국민 80%가 조부모는 가족이 아니라는 통계가 나왔다. 현대사회가 낳은 아픔이지만 이런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읽힌다면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도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계룡문고·책읽어주는아빠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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