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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인생사계(人生四季)

2013-10-30 기사
편집 2013-10-29 20:58:24
 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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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우리 인생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가 있다고 했다. 자연에는 꽃이 피고 나뭇잎에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있듯 우리 인생에도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있다. 여름으로 접어들면 타오르는 태양과 장대비 속에서 만물이 크게 자라나듯 우리 인생도 여름이 되면 왕성한 생명력을 머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게 된다. 끝없이 찌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산야에 고운 단풍이 들 때면 들녘에는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로 넘쳐나는 가을이 찾아오듯 우리 인생에도 결실의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낙엽 진 거리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흰 눈이 덮이는 추운 겨울이 있다면 우리 인생에도 모든 것의 마지막을 알리는 겨울이 있다.

그러나 자연과 인생의 춘하추동에는 서로 닮은 점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자연의 사계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면 다시 새봄이 오지만 인생의 계절은 그렇지 않다. 우리 인생은 다시 새봄이 오지 않는다. 인생은 누구에나 동일하게 일회적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일생이라고 부른다. 가을 들녘에 나가 추수하는 농부가 풍성한 소출이 없어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것은 새봄이 찾아오면 다시 파종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사람에게 열매가 없다면 돌이키기 어려운 깊은 나락에 빠져들 것이다.

자연의 현상과 이치를 통해 배움과 깨달음을 얻은 자연종교는 우리 인생들도 자연처럼 순환하고 반복된다고 가르친다.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종교관은 한(恨) 많은 중생들을 달래려는 고육책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들 그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단 한 번의 삶의 기회와 얼마간의 시간이 운명적으로 주어진다.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였던 모세가 인생의 말년에 드린 기도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간다'고 했다. 이 짧은 기도는 세 가지의 중요한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인생의 길이는 대략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 대부분은 슬픔과 고통의 날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지 않은 인생의 시간들조차 매우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인생의 길이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지만 속도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하룻밤 자고 깨어난 것처럼 빨리 지나갔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살 수 있을까. 잘 먹고 건강하게 장수하며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얼마 전에 가수 박진영이 신곡 하프타임을 발표했다. 노래는 자신의 심경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해 또 다른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인기 얻고 돈 버는 것이 성공인 줄 알고 그냥 앞만 보고 미친 듯이 정신 없이 뛰었던 자신의 인생 전반전을 돌아보며 인생의 후반전을 깊이 생각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보통은 인생의 내리막길이나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 앉게 될 때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법인데 말이다.

성공적인 사업가로 이름이 높던 밥 버포드는 '하프타임'이라는 책으로 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밥 버포드는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를 운영하던 성공적인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사회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이 전혀 다른 인생의 대반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밥 버포드가 이렇게 된 것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성공지향적인 삶으로부터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져 볼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하프타임을 갖는 것이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거침없이 흘러가는 것이 시간인 것 같다. 한 해도 어느덧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가을 햇빛이 좋은 길을 걷든지 아니면 베르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봄도 좋을 듯싶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인생을 보다 잘 보내려면 그런 여유라도 부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홍관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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