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신해품에 궁자의 비유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 빈궁하게 살다가 우연히 고향을 향하게 된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 성에 정착하여 아주 큰 부자가 됐다. 아들은 품팔이를 하며 떠돌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집에 이르러 멀리서 아버지를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집의 웅장함에 놀라 감히 품을 팔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눈에 아들을 알아보고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다. 아들은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몸부림치며 저항하다가 기절했다. 이를 지켜본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아들을 보내주었다."

여기에서 빈궁한 아들(궁자)은 마음에 괴로움이 산적한 중생을, 부자 아버지는 모든 것이 구족(具足)한 진리의 자리, 부처님을 의미한다. 궁자는 금세 사라지는 재물,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 매일 품을 팔아야 하는 중생을 말한다. 궁자가 고향으로 향하는 것은 중생의 삶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종교를 찾는 것을, 부자가 상봉하는 것은 불교에 처음 입문하는 것을, 아들이 아버지를 못 알아보는 것은 세상에 집착하여 부처님 법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아버지가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들이 저항하다가 기절하고 떠난다는 것은 불교의 심오한 법을 듣지만 좁은 인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아 수용하지 못하고 불교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은 일어나 어느 마을을 찾아가 다시 품을 팔게 되었으나 아버지는 심부름꾼을 시켜서 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심부름꾼은 아들에게 다가가 거름을 치우는 일이 있는데 품삯을 두 배로 준다고 설득해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아버지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항상 이곳에서 일하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부처님께서 중생의 수준에 맞는 방편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중생의 눈높이에서 중생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품삯을 주는 것은 기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복으로 중생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해준다. 거름 치는 일은 불교의 낮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과법을 일러줘 선행과 이타행을 하게 하고 그 복으로 사후에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가르침이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는 것은 삼세의 모든 성인들이 불법에 귀의하여 괴로움의 바다를 건넜으니 다른 법을 구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아들은 항상 거름 치는 일만 성실하게 하며 지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빈궁한 아들을 불러서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이제부터 집안의 모든 금은보화를 맡아서 관리하라고 했다. 이에 아들은 아버지의 명대로 성실히 일하였고 집안의 모든 곳에 출입이 자유롭게 되었다. 임종할 때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친족들과 국왕, 대신들을 모이게 하고, 그들에게 빈궁한 아들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자신의 전 재산을 물려주었다."

빈궁한 아들이 거름 치는 일을 성실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행과 이타행, 육바라밀, 팔정도 등 기초수행을 열심히 했다는 의미다. 아버지가 궁자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궁자가 법명을 받고 불자로 다시 태어나 정식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금은보화를 관리한다는 것은 비로소 상위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집안의 모든 곳에 출입이 자유로워진 것은 불법의 맛을 느끼게 되어 더 이상 기복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아들은 일체중생을 의미하고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다는 것은 중생이 경전을 깨달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법화경 궁자의 비유는 부처님의 자비와 방편, 중생이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을 비유로 보여준다. 부처님께서는 돌아온 궁자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루하루 품팔이를 하는 괴로운 궁자의 삶에 머무르지 말고 불성을 깨달아 부처님의 재산 일체를 물려받아 부자가 되라고 하신다.

김신철 변호사 대승불교양우회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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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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