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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무기력한 그대에게

2013-09-04 기사
편집 2013-09-03 21:20:20
 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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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삶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로 그의 유명한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시작한다. 부처도 삶을 고해라고 했다는데, 삶이 어렵고 힘든 것은 모든 시대와 종교를 초월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아 알게 된 것 같다. 스캇 펙은 인생살이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평범한 진리만 알고 있으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삶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살며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로 실망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고통을 자신만 겪고 있다고 불평하거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문제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피곤하고 힘들다. 어려움 속에 살다 보면 심신이 지치고 피곤해 쉼을 얻는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상실하면서 점점 더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다. 무기력은 무엇보다 우리의 자아를 위축시켜 점점 왜소하게 만든다. 그런데 무기력은 무능과는 좀 다르다. 무능은 능력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만 무기력은 능력이 있음에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기력은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바울에게는 깊은 질병이 있었다. 이 질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사단의 가시라고 불렀다. 질병이 인생의 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 질병은 당시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 앞에서 표현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바울은 건강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고침을 받지 못하고 그 대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기도의 응답만을 받게 된다.

놀라운 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하는 질병이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질병이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문제로 알고 처음에는 기도했지만 후에 자신에게 꼭 필요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가시 때문에 더 잘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에 보면 캐나다로 가던 배가 난파를 당하여 파이라는 소년이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같이 표류를 하게 된다. 호랑이가 소년을 잡아먹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소년은 이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도록 방치를 하지 않았는데, 모종의 관계를 둘이 맺었던 것이다. 호랑이가 배가 고프면 낚시를 부지런히 해서 먹을 것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거래는 소년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호랑이에게도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이 둘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긴장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표류생활을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들이 찾던 섬이 눈에 들어왔다. 구명보트가 섬에 닿자마자 호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달아났다. 그때 파이라는 소년이 울음을 터트렸다. 원수 같은 호랑이가 떠났는데 왜 이 소년은 울었을까? 각자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호랑이가 있다.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두려운 호랑이 말이다. 한시라도 빨리 없애 버리고 싶은 원수 같은 호랑이가 한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중요한 것은 이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가시 때문에 무너지면 안 된다. 절망하거나 괴로워하여 넘어져서도 안 된다. 파이라는 소년은 오히려 이 호랑이 때문에 긴장하고 삶의 의욕을 불태웠는지 모른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박사는 자신의 책 우물을 파는 사람에서 '우리는 모두 깨지기 쉬운 생명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같다. 늘 불안하고 믿지 못하고 벌벌 떤다. 그것이 우리의 짧고 덧없는 인생'이라고 했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자아를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한계 앞에서 인간의 존재됨을 바로 알아야 인생의 허황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생은 나의 능력으로 사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은혜이다. 일반천금이라는 말은 한 끼 식사에도 천금 같은 은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인생의 무기력은 인간의 존재됨을 바로 알고 하늘의 뜻을 담는 그릇이 아닐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하리라.

김홍관 목원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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