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아직 유로화폐를 사용하기 전 독일의 100마르크짜리 지폐에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프랑크푸르트 음악대학 교수였던 클라라 슈만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당시 많은 나라에서 자국의 화폐에 유명한 전쟁 영웅이나 정치가의 얼굴이 들어 있던 것에 비해 당시 독일의 화폐에는 과학자, 예술가, 문학가 등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어서 독일인들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반영되어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이 클라라 슈만이 바로 독일 낭만음악에 있어서 비껴갈 수 없는 하나의 큰 산,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다.

1840년 로베르트 슈만은 드디어 찾아온 인생의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자기의 피아노 선생님의 딸인 클라라와 깊은 사랑에 빠져 그 결혼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릭 비크와 2년간의 법정투쟁까지 벌인 후에 드디어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나 극적인 삶을 살았고 결국 정신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그의 비극적인 인생 가운데에서도 이 무렵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로 기록이 되며 그의 주옥같은 가곡음악들이 많이 작곡되어서 '가곡의 해'라고도 불리는 시기이다. 250여 편에 달하는 수많은 그의 가곡들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슈만은 이 작품에서 하이네의 '노래의 책' 중 '서정적 간주곡' 부분에 음악을 붙여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서정적 간주곡'에는 하이네의 사촌 동생이었던 아말리에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고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작품 내에서 이원화된 자아를 투영하거나, 텍스트를 통해 자아를 투영하는 수법을 즐겨 썼던 슈만은 이 '시인의 사랑'에서 극적인 요소보다는 꿈결 같은 선율로 낭만성과 비극성을 극대화시킨다. 특히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처럼 내용적인 연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결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제1곡 - 6곡은 사랑의 시작을 제7곡 - 14곡은 실연의 아픔에 대해서 15곡과 16곡은 지나간 청춘에 대한 허망함과 잃어버린 사랑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원래는 테너를 위해 쓰여졌지만 그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워 바리톤들도 종종 음을 낮추어 연주하는 곡이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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