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통화와 주가 폭락에 따른 아시아 신흥국발 금융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높은 9월이나 10월 초가 아시아 금융시장 불안의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도 시장 모니터링의 강도를 높이고 금융사에 과도한 단기외화 차입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나섰다.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위기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도·인도네시아·태국·터기 등 신흥국에 대거 유입됐던 선진국 자금이 다시 선진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국의 펀더멘탈(기초 여건)이 이들 신흥국들과 다르고 차별화 되어 있어 한국경제에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외풍에 약한 우리 경제의 특성상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되면 어떤 파장에 시달릴지 모른다. 펀더멘탈이 좋은데도 지난 6월 초 양적완화 축소 언급이 나왔을 때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했던 적을 상기해야 한다. 증시도 일부 영향을 받은 바가 분명히 있었다. 대기업의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것도 언제든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평가기관인 CEO스코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297개사의 차입금 의존도가 29.5%에 달한다. 보통 안전수준인 30% 이하의 경계선까지 육박한 것이다. 이미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운송업 해운업은 70%를 넘었다. 30대 그룹 중에도 다수의 기업이 40%를 넘긴 것으로 나타나 자칫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변동할 경우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왜 갑자기 금융이 파국을 맞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단기투기성자본의 과다 차입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에 있었지만 무엇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금융사회는 한국에 대해 많은 의심을 갖고 있었다. 국제수지는 만성적자인데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해외단기차입에만 열중하니 대외지급 능력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차입한 돈을 자동차, 제철, 석유화학 등에 중복 투자하는 대기업을 보고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잇따른 기업 부도를 보고는 금융기관 부실 채권을 떠올렸을 것이고, 정경유착·금융비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의심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 당시를 다시 떠올리는 것은 위기의 정체를 정확히 알면 대응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경상수지가 상당한 흑자수준으로 돌아섰고, 외환보유액도 3200억 달러에 달할 만큼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나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기업과 국내 은행들의 차입금 의존도는 여전히 불안한 수준이다. 신흥국 위기가 중국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와 가장 큰 교역국인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수출 둔화에 따른 하반기 경기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IMF 구제금융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금융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경제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에 대비해 금융개혁은 항시적으로 추진할 과제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