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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색즉시공 공즉시색

2013-08-21 기사
편집 2013-08-20 22:03:07
 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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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철 변호사 대승불교양우회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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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산 중 어느 절에 방문했다가 그 절의 행자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 행자는 절에 들어오기 전 대학 후배와 동업을 해 돈도 제법 벌었었는데, 어느 날 동업자인 대학 후배와 아내가 눈이 맞아 모든 재산을 가지고 함께 잠적했다고 했다. 그 행자는 믿었던 사람의 배신에 괴로워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세상살이에 회의를 느껴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 행자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부처님께서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생각났다. '색즉시공'이란 색이 곧 공이라는 말로 '현상(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인연화합에 의해 가합적으로 만들어진 허망한 것(공)이다'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현상으로 만들어진 것을 실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어 집착한다. 이것은 내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가 막상 변하여 사라지면 미움과 원망이 사무쳐 가슴에 깊게 각인된다.

그러나 우리가 애착·집착하는 대상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연기적으로 일어난 실상이 없는 것이다. 남편과 부인, 빈부와 귀천, 선과 악, 사랑과 미움 등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생겨나고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연에 의해 서로에게 의지하여 생겨난 일체의 현상은 업보의 산물이고 영원하는 실체가 아니다. 그런 허깨비에 홀려 미움과 원망을 마음에 각인시키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색즉시공의 이치를 알게 되면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이 비로소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인 줄 알게 돼 인연에 의해 밀려오는 충격에도 마음이 사무치지 않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그 행자가 동업자와 부인 그리고 자기 마음이 조건에 의해 잠시 생겼다가 조건이 바뀌면 변하여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라는 색즉시공을 알았다면 상대방의 배신에 사무치도록 괴로워하며 마음을 원망으로 물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이 공하여 변해 가는 허망한 것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허망하다고 하여 다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허깨비 세상이니 막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이에 관해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공즉시색'을 말씀하셨다. 공즉시색이란 공이 곧 색이라는 말로, 이 세계가 공하지만 분명히 현상적으로는 존재하는 세계라는 의미다.

이 세계는 비록 실체가 없는 허망한 세상이지만 업보에 따라 천차만별로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엄밀한 법칙이 빈틈 없이 적용되는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는 마치 꿈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꿈이 바로 현실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동안 허망하다고 도피하거나 허상이라고 남에게 피해를 주며 마구잡이로 살면 이 세계의 법칙에 걸려 괴롭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법칙에 따라 순응하며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 세계는 서로에게 의지해 존재하는 상대적 세계이므로 선을 행하면 선의 과보를 악을 행하면 악의 과보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알아 최선을 다해 세상에 이익 되는 일을 하여 복을 지으며 살아야 한다.

색즉시공이므로 세상이 허상임을 알아 어떤 충격이 오더라도 애착·집착하지 않아 마음에 사무치지 않도록 하되, 공즉시색이므로 허망함에도 빠지지 말고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복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살면 세상을 치열하게 살되 마음은 항상 고요한 선정에 들게 되어 끝내는 상대적인 세계를 초월한 진리의 세계에 들 수 있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가르침이다.

절에서 만난 행자가 반야심경의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을 배워 배신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더 나아가 세상사의 허망함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을 짓는 수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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