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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생물학 실험실의 '소'는 누가 키우나

2013-08-20기사 편집 2013-08-19 21: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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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운영본부장

20세기는 정보통신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 한다. 생명과학은 분석장비와 분석기술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생명의 신비를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과학 뉴스의 절반 이상이 생명과학, 의약학 분야의 소식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이공계의 우수한 학생 대부분은 의과대학, 약학대학으로 몰려든다. 이렇게 우수한 인재들이 질병과의 전쟁에 투입되어 스마트한 발견들이 이어진다. 또한 생명과학의 연구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미래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처럼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생물학 실험실에 들어가 보자. 모든 생물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우 복잡한 구조로 경이로운 성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생물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 생명과학은 복잡한 생물 시료에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까다로운 시료 전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생물체는 우리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이 동일한 종일지라도 제각각 다른 상태에 존재한다. 연구자가 세운 가설의 진위를 밝히는 데에 필요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개의 생물 개체에 대하여 반복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반복실험 중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 연구자는 이전에 세운 가설을 수정하고 다시 실험에 들어간다.

생물 시료의 분석에는 복잡한 생화학적 매뉴얼이 존재한다. 마치 요리책의 레시피(recipe)를 따르듯이 시료를 파쇄기로 몇 분간 부수는지, 몇 도의 온도로 가열하는지, 시약을 얼마만큼 넣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원심분리기를 돌리는지 등등을 오랜 연구 역사를 통해 최적화된 설명서에 따라 각 단계별로 실수 없이 정확하게 마쳐야 한다.

혹자는 생물 실험이 수많은 연구분야 중에서도 대표적인 노동집약 분야라고 한다. 반복되는 단순작업들이 실험의 많은 분야를 차지하므로, 대부분의 실험실에서는 업무가 분리된다. 연구 목표를 만들고 목표 달성을 위한 실험 방법을 고안하며 실험을 할 예산을 조달하는 사업 책임자, 실험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하여 인력과 자원을 관리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 운영자, 운영자의 지시에 따라 매뉴얼을 정확히 준수하면서 실험의 일부를 보조하는 연구원. 이런 일들을 한 사람이 도맡아 한다면, 연구를 위한 예산 확보도, 분석 실험도, 연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각각의 일들이 모두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의 경제난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안정적 인건비 예산은 확보되지 못하였고, 연구를 보조하는 인력은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었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는 연구개발 사업 예산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보조 인력에 대한 정규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새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과학 분야의 실험실보다 보조 인력의 비중이 높은 생물 실험실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예산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험실에서 각자가 수행하는 업무에 따라 적절한 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의 미래를 밝힐 생명과학 연구를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려면, 실험실의 보조 인력에 대한 안정적 예산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문제를 분야별로 전문성이 높은 업무와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구분하여 인력 운영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안정적 고용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실험실에서 소위 '소를 키우는 일'은 생명과학의 화려한 연구 업적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참여에 의해 수행되어 왔으며,'소 키우는 일'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적절한 정규직 직급 마련과 인력 배정, 예산 지원은 현재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인력 문제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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