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볼코프가 쓴 `회상`이라는 책은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이라 불린다. 볼코프는 쇼스타코비치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 그의 일생을 회고하였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볼코프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자신 주변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자기의 이야기를 해 나갔다. 이 책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은 무슨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해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인생 말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한 책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전공생들뿐 아니라 음악과 음악가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가끔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몇 대목은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그는 자신의 5번 교향곡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최근엔 언어가 음악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가사를 음악에 붙여 두면 내 의도를 오해할 위험이 적어진다. 내 음악의 최고 해석자라고 자처하는 어떤 사람이 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뜻밖에도 이 사람은 므라빈스키를 지칭한다) 내가 교향곡 5번과 7번에서 활기차고 환희에 넘치는 피날레를 작곡하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략) 무슨 기뻐 날뛸 일이 있다고 환희에 찬 피날레를 작곡한다는 걸까? 내가 그런 걸 꿈도 꾸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이 사람에게는 전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략)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이 당신을 몽둥이로 때리면서 `네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 행진하며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글을 읽고 나서 다시 이 비극적인 교향곡의 피날레를 들어 보면 스탈린 치하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빼앗긴 수많은 군중이 기계적인 팡파르에 맞춰 넓은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전쟁과 독재권력 치하의 많은 군중들의 숨죽인 슬픔을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던 쇼스타코비치,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그 고통과 한숨소리, 전체주의적 사회체제 속에서 개인의 인간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았던 그의 음악가로서의 절규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피날레이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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