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 대우교수 언론인

8월 25일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야당의 장외 투쟁에도 지난주 대통령 지지도는 54%로 8월 한 달 동안 60%를 넘나들고 있다. 정치판은 볼썽사납지만 국민의 정치인식은 높아져 대통령 신뢰도는 객관적이고 지속성이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여섯 달 헌법 질서와 국가 정체성·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다. 오바마·시진핑을 만나 할 말을 했고 김일성 체제와도 대화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진정한 광복은 통일로 완성된다"고 전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식과 국제 규범이 통하는 남북 관계를 정립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미방위조약을 파기한 69년 닉슨 독트린 선언에 대응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8월 15일 "전쟁 준비에 광분하지 말고 창조 경쟁에 나서자"고 제의하고 문제가 있는 '7·4 공동성명'까지 수용했으나 북한은 적화 통일 야욕을 못 버리고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73년 대화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북한의 대화 종결에도 북한 정권을 인정하는 6·23 선언까지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에 주민투표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평화통일 3원칙'을 발표했다. 남북평화 공존 모색을 4년 만에 원점으로 돌려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거울 삼아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대화를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남북 대화에 앞서 박근혜정부는 북한이 독촉하는 '6·15, 10·4 선언 이행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6·15, 10·4 선언은 국회 인준이 없기 때문에 선언으로 끝난 것이지만 김정일이 애타게 이행을 촉구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합의했던 것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 약속한 10·4 선언은 국정원의 김정일·노무현 대화록 공개로 폐기 처분해야 마땅한 내용으로 확인됐으나 김일성이 주장했던 연방제 통일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6·15 선언을 준비한 김대중·김정일 대화록은 알려진 것이 없다. 2000년 6·15 선언 직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까지 찾아와 알려고 했던 내용이다. 구체적인 통일 방안과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김정일 대화를 파악해 대북 협상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 일본에 달려갔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8·15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게도 할 말을 했다. 비정상과 비상식을 바로잡고 신뢰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박 대통령은 제의했다. 그러나 일본은 히로시마 피폭 68주년에 항공모함 이즈모(出雲)호 진수식을 갖고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의 과거사 반성 촉구와 동떨어진 1세기 전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는 모습이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도 소련 중공의 위협과 함께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며 한미방위조약 체결을 미국에 요구했었다.

박근혜정부는 한 세기 전 일본의 한국 침략을 미국이 방조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제2의 미국과 일본의 물밑 거래가 없도록 대미·대일·대중 외교를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취임 6개월을 맞는 박근혜정부의 구악 청산과 인사 쇄신을 촉구한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 다음 날 박 대통령은 "잘못된 관행 수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하며 변화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김정일·노무현 대화록 증발, 원전비리, 대기업 집단과 고위 공직자 결탁 등의 비리를 사례로 지적했었다. YS, DJ, 노무현, MB정부 사람들에 둘러싸인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력의 부패와 관료체제의 문제점을 실감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사교육 정상화와 원전비리 척결을 각각 4번이나 지적했으나 오리무중이다. 잘못을 저질렀던 조직에게 그 시정을 주문했으니 오리무중인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은 좋은 결단이었다. 권력 핵심의 부패 무능 실정으로 실패한 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후진정치 권력의 구조적인 모순과 악습을 근절하는 숙정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과 기득권 세력의 부패 척결은 박 대통령 임기 중 끝장을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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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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