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전쟁 후 한 외국인은 한국의 첫 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무 한 그루 없고, 오직 보이는 것은 흰옷 입은 사람들과 붉은 벌거숭이 산 뿐이었다고. 당시 한국은 전체 산림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5%, 민둥산이 50% 정도로 사막화 직전이었다. 당시 유엔은 한국의 산림 황폐화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지금 온 산하는 푸른 숲으로 울창하게 뒤덮였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는 산림면적이 636만9000ha로 전체 국토의 63.7% 해당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4번째로 넓은 비율이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109조원으로 GDP의 9.3%에 해당한다고 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우리나라를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조림성공국가로 발표한 바 있다. UN도 1982년 FAO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했다. 현재 산림청은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등 세계 20여개 국과 협력을 맺고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경험 및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세계는 한국의 산림녹화에 대해 ‘기적’이라며 감탄하고 있다. 어떻게 한국은 산림복구 불가능 국가에서 불과 수십 년 만에 산림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최고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부처 칸막이를 뛰어 넘었기에 가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연두기자 회견에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3월 3일 정부조직법을 공포해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했다. 졸지에 기관 하나를 뺏기게 된 당시 김보현 농림부장관은 반박 논리를 들고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농림부는 식량증산 해야지 조림녹화까지 하기에는 버겁다. 내무부에 빌려줬다 10년 뒤에 돌려 받으라고 했다”며 당시 치산녹화 사업을 담당했던 고건 전 총리는 얼마 전 한 TV 프로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법까지 개정해 산림청을 농림부가 아닌 내무부에 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세계적으로도 그런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 때문이었다. 산림청은 당시 농림부의 외청으로 본청만 서울에 있는 단일 기관이었다. 전국에서 동시에 지속적으로 녹화사업을 해야 하는데 동원할 조직과 인력이 없었다.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의 지휘권을 쥔 당시 김현옥 내무장관은 3월 16일 전국의 도지사, 시장, 군수, 경찰서장 등을 내무부로 불러 모았다. 대통령의 뜻을 전하면서 오로지 치산만을 강조했다. 이날부터 내무부는 새마을운동과 똑같이 내무공무원을 총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산림청장에게도 막강한 힘을 실어줬다. 비상국무회의나 새마을 국무회의에 배석하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예산문제 등 관계부처와의 협조도 원활했다. 지방조직도 일사분란하게 갖췄다. 전국 각 도에는 산림국이, 시·군에는 산림과를 신설했다. 10개년 계획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6년만인 1978년에 끝났다. 이 기간 동안 108만㏊에 나무를 심고, 420만㏊에 육림을 조성했다. 사방사업은 4만2000㏊에 걸쳐 추진했고, 30억 그루의 양묘도 생산했다. 1차 치산계획에 참가한 단위마을은 전국에 걸쳐 3만4000여개에 달했다. 대한민국의 치산녹화는 온 국민이 참여해 이룬 인간승리이자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였다.

요즘 각 부처들이 다른 부처와 앞다퉈 양해각서(MOU)를 맺고, 마치 대단한 일인 양 내세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고 강조하자 나온 현상이다.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는 것은 제 영역만 챙기고 타 부처 일은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이제는 버리고 부처 간 협업과 조율로 정책효과가 국민에게 전달되도록 하라는 뜻일 것이다. 치산녹화사업은 부처칸막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책효과는 추진의지와 비례한다. 국민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면 먼저 확고한 의지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추진 주체에 인력과 예산 등을 뒷받침해주면 부처간 협의와 조율은 잘 이루어질 것이다. 칸막이부터 의식해서 될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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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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