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일본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땅에 묻어 흙이 되어야 할 과거사를 시도 때도 없이 계절 따라 되살아나도록 싹을 틔우고 있다. 원죄의식이 없으니 무슨 말인들 못하랴 싶다. 그들을 각성시키는 방법은 끊임없이 그들의 잔혹상을 일깨워 주는 길밖에는 없다. 그 사례 하나로 명성황후 시해(弑害)사건에 관한 얘기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런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말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음력 8월 20일). 서울에 주둔 중인 일본 군인들은 느닷없이 경복궁을 침입한 뒤 남의 나라의 황후를 시해하였다. 침입 병력 중에 더러는 조선군사의 복장으로 위장하고 가담한 자들도 있었고 우범선처럼 제2지대장이란 직함을 지닌 한국인도 동원되었다. 대원군도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일본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영문도 모르는 채 쿠데타의 주인공처럼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경복궁 담을 넘어 침입한 이들 군사들은 왕의 처소인 장안당과 왕비의 침실이 있는 곤녕함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그들의 암호인 '여우(명성황후)'를 찾아 광분하였다. 그러는 사이 일국의 군주인 고종은 멱살을 잡힌 채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면서 곤욕을 당하였다. 이를 방호하려는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은 양손이 일본 칼로 잘린 채 총으로 조준 사격을 당한 뒤 즉사하였다. 훈련대장 홍계훈(洪啓薰)도 일본 장교의 칼에 맞아 숨졌다. 왕후를 모시던 궁녀들은 하나같이 머리채를 끌린 채 "여우가 어디 있느냐"는 신문(訊問)에 대답도 못 하고 발길에 차이거나 단칼로 베임을 당하면서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망건만 쓰고 달려온 세자 이척이 나타나자 괴한들은 망건을 잡아채고 상투를 붙잡고 흔들면서 왕비 있는 데를 대라고 다그쳤다. 대답이 없자 발길로 차면서 앞장을 세워 옥호루 앞마당에 쓰러져 있는 여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라고 윽박질렀다. 그 사이 세자빈이 들이닥쳤으나 칼을 맞고 쓰러졌다. 세자는 울기만 할 뿐 말이 없자 틀림없는 왕비라 단정하였다. 왕비에게 칼을 휘두른 사람은 일본 육군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라고 밝혀졌다. 그리고 현장을 지휘한 사람들은 8명의 육군 장교였고 지금까지 낭인의 소행이라고 알려진 사실들은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동아일보 2010년 1월 11일).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군부의 소행임을 자인하는 자체 자료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거짓된 보고자료뿐이었다.

조선정부의 고문으로 있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藏)라는 사람이 범행자들의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쓴 보고서라고 하는 것도 보면 기가 막히기가 이를 데 없다. 조흔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비를 끌어내어 두서너 번 칼질을 한 뒤 나체로 하여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행한 뒤 마지막으로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라고.

이에 대해 소설가 김성한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낭인 한 사람이 나섰다. …계집은 벗겨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 그는 달려들어 치마저고리를 잡아채고 속옷까지 벗겨버렸다. …왕비의 죽음을 확인한 그들은 말 없는 시체에 갖은 오욕을 다 가했다.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저들과 같은 동포라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하였으니'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소설가 김진명은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국부검사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새겨들어 보라"고 호소하듯 말한다.

이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정부는 예나 이제나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일본정부가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거대한 음모였음에도 말이다. 미우라 고로가 이토(伊藤博文)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나 그의 후임 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작성한 보고서가 메이지(明治) 천황에게도 전달되었다는 사실(이종각)만 보아도 일본은 그 진실을 알고 있다.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작정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일에서처럼 '전범 사냥꾼'도 있어 본 적이 없고 '일본의 만행에 대한 종합 보고서'도 발간한 적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류역사에 남겨 놓아야 하지 않을까? 절박한 심정은 필자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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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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