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14일 오후 4시.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에서 대규모 블랙아웃(black out) 사태가 벌어졌다. 총 6180만 kW규모의 대정전(大停電)으로 뉴욕과 뉴저지, 미시간, 오하이오 등의 교통 기능이 일제히 마비됐다. 공항도 폐쇄됐다. 사람들은 걸어서 귀가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사람들은 또다시 경악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력이 끊긴 냉장고에서 음식들이 썩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대정전은 북미 대륙의 몇 몇 지역에서 7일 이상 지속됐다. 세계 최초로 전기를 발명하고 공급했던 미국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미국·캐나다 합동조사단은 대정전이 수목관리의 부실로 인한 송전선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밝혀 냈다. 대정전으로 인한 경제적 손해만 60억 달러에 달했다. 5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부개척시대로 돌아갔다는 분노를 쏟아냈다.

미국의 유례 없는 블랙아웃에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대정전으로 인한 사회 혼란 시나리오도 나왔다. 대정전 첫날에는 상점이 문을 닫고, 현금자동인출기·주유소 등의 이용이 어려워진다. 3일이 지난 2단계에는 각종 기기의 사용이 힘들어지며 생필품 사재기 등 혼란이 시작된다. 10일 뒤인 3단계에는 약품 부족과 냉난방 불가능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3개월 이후인 4단계에는 폭동이 발생한다.

미국 8·14 대정전 직후 한국전력거래소가 내놓은 `미국·캐나다 동부지역 대정전 사태의 교훈` 보고서는 "(한국 역시)예상치 못한 고장이 다중으로 발생하는 경우 전력계통이 급속하게 불안정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보호장치 등의 오작동으로 고장이 넓은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다각적인 상황을 고려해 안전 장치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10년 전 보고서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지난 연말 원전 부품 비리 사건으로 발전소 2기가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 11일과 12일 충남 당진화력과 서천화력의 발전소가 이상 징후로 잇따라 멈췄다.

블랙아웃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과음으로 인한 기억 상실, 무대의 암전(暗轉), 보도관제 등이 있다. 어떤 것이든 `비정상적인 혼돈 상태`를 말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10년 전 보고서를 어떻게 파악했든 그들의 정신 세계가 `블랙아웃`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권성하 충남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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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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