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대우교수 언론인

민주당은 지난 토요일 서울시청 앞에서 5만 명을 모았다고 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규탄을 위한 자리다. 이날 서울의 낮 기온은 섭씨 31도. 느닷없이 비도 퍼붓는 등 날씨도 불안한 날이었다. 이런 날, 5만 명을 모아 현 정권을 규탄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19일의 대선에서 진 것이 억울할 것이다. 여당 후보와는 3.6%, 100여만 표 차였다. 대선의 유권자 규모로 보아 그렇게 큰 표차도 아니다. 국정원 직원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다는 데 참여했고 서울경찰청이 이 사건을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발표까지 했다고 하니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래서 이날도 폭염을 무릅쓰고 서울 한복판에 나와 정부와 여당을 규탄한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런 야당을 바라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어리다,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시민들을 자극해서 격렬한 시위를 유발하거나 극도의 혼란을 조성해서 현 정부를 몰아내겠다는 생각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들도 대선불복까지는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장외집회의 목적은 그들의 정당성과 지난 대선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일 것인데 그런 목적이라면 이제 웬만히 됐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집회가 그들의 마이크 체질을 만족시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맨 앞자리에서 집회를 주도하는 모습이 TV에 나오면 더 실감나게 정치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에는 방송국에 국회 국정조사의 TV중계까지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의 노출선호는 TV탤런트보다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모습들도 아직 어리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은 이런 정치인들에게 무조건 박수를 보내는 단계를 졸업한 지 오래다.

지금 야당에는 70년대와 80년대 국민적 동조를 받았던 운동권시대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맞서서 용감하게 저항할 때,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 투쟁경력을 딛고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유독 야당에 많다. 그러나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30년, 40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독재와 억압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그때와 연결시키려고 여러 과장법과 미사여구를 쓰지만 그런 전술의 효과는 실망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야당이 과거에 날렸던 운동권 스타일을 재현하려는 안간힘도 때로는 측은하게 보일 뿐이다. 마치 흘러간 스타의 망가진 얼굴과 부자연스런 몸짓을 보는 것처럼.

야당의 장외투쟁이 호소력을 잃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왕년의 장외투쟁은 장내가 막혀 버렸기 때문에 충분한 이유와 동정이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 의혹 사건은 이미 장내 절차가 다 마련되어 있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과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이미 구속까지 되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재판을 통해서 많은 의문들이 풀릴 것이다. 또 국회 국정조사특위도 아무 방해 없이 가동되고 있다. 재판과 특위, 이 두 개의 제도적 멍석이 잘 깔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대를 벗어나 활극을 연출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치기를 연상케 한다. 지나도 한참 지나버린, 운동권시대의 추억이나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의 추억이 발동한 것이라면 그것 또한 국민들의 눈높이보다 낮은 생각이다.

국정원과 경찰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그 얘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이 그것 한 가지에 전부를 걸고 몰두하는 동안, 국회에 산적한 법안이나 현안들은 계속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안다. 그들은 밖에 있든 안에 있든, 잘하건 못하건 간에 한 달에 1000만 원씩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수를 받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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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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