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관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

현대 호스피스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엘리자베스 K. 로스는 임종환자들을 통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두 개의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감정들은 죽음이 가까워오면 점점 약해지거나 사라졌지만 사랑과 두려움의 두 감정만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시기, 질투, 미움, 이러한 감정들은 평상시 풀어내기가 어려워 보였어도 죽음 앞에선 평생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과도 화해하거나 잘못을 용서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과 두려움의 감정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사랑과 두려움의 두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갖가지 동기가 숨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사랑과 두려움인 것이다. 우리는 이 두려움과 사랑 때문에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게 된다. 사랑과 두려움이 삶을 살아가는 동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로 일곱 명의 노동자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사망자의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가 공사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으셨다"며 "그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는 20여 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막노동을 하며 아들의 사법시험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같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아버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이처럼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학생들이 아침 일찍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가는 것은 무엇보다 두려움 때문이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당장은 부모나 담임교사의 체벌과 멀게는 성적이 떨어져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없게 되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두려움은 또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술 담배를 즐겨 하다가도 그만두는 것은 혹시 몸에 이상이 생겨 건강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되면 비록 목표한 것을 얻는다 해도 그다지 행복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데 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끊임없이 심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직장에서도 두려움을 전파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일의 능률과 능력이 부족하면 퇴출될 것을 암시해 불필요한 경쟁관계와 긴장감을 고조시켜서 조직을 장악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학교현장과 가정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더 해롭고 나쁜 것은 종교에서조차 신앙적 두려움을 악용하여 신도들을 임의로 억압하거나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은 자신의 모임이나 조직을 이끌 때 두려움을 주된 동력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종종 이러한 유혹으로 인해 국가를 공포정치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렇게 두려움을 이용하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통해 자신들이 목적한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누가 두려움을 특별히 조장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인 삶의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질병과 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종교의 참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학자인 데이비드 베너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다"라고 했다. 완전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요한1서 4:18) 빛을 비추면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듯이 사랑이 두려움을 물리치게 된다. 사랑이 있을 때 충만한 인생이지만 사랑이 사라지면 공허한 인생이 된다. 사랑이 있을 때 인생의 빛이 나지만 사랑이 떠나면 인생도 어두워진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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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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