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여성가족부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국가 성평등 지수는 보건, 취업훈련, 문화정보, 경제, 복지, 가족, 안전, 의사결정 부문을 측정하고 있는데 2012년에 각 부문을 합한 평균은 63점으로 아직은 낙제점 수준이다. 특히 여성의 안전과 의사결정 부문은 53점과 19점으로 특히나 저조한 수준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2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통계치를 보면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으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120명이었으며 살인미수로 가까스로 생존한 여성은 49명이었다. 보도된 사건만 이 정도일진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까지 포함하여 여성폭력범죄에 대한 별도의 통계를 내 본다면 아마도 놀랄 만한 자료가 나올 것이 예상된다.

또한 여성들은 일자리와 권한에 있어서도 여전히 차별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여성들의 교육률과 진학률, 고시합격률과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2013년 우리나라 20대 기업의 남녀 임금격차를 보면 남성이 여성의 1.7배에 달한다. 또한 전체 여성 일자리의 70%는 150만 원 이하의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고속 발전하였으나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으로 인해 근속과 승진에서 밀려나 고위공직, 기업 임원, 정치 참여 등의 여성의 권한과 관련되는 성평등 지수는 OECD국가 중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군가산점제도 부활 등을 주장했던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가 남성연대에 대한 관심과 1억 원의 후원을 호소하며 단체 홈페이지에 예고문을 올린 뒤 공영방송 카메라 기자와 단체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강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이 무모한 시도는 며칠 뒤 그가 시신으로 인양되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의 죽음 이후 여성가족부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보도의 아랫자락에는 어김없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많은 댓글들로 도배되었다.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는 그 영향력은 크지 않았으나 남성이 여성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으므로 국가미래와 성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남성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가 생전에 천황제 회귀와 평화헌법 반대 주장을 하다가 일본 자위대 옥상에서 사무라이식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오(1925-1970)라는 일본 극우 인사를 존경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그의 마지막 또한 '보다 강인하고 남성다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에 기인한 죽음인 것 같아 더욱 씁쓸하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의아한 것은 기이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도 생전에 균형 있는 사회를 역설하며 성평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들을 보면 그가 원하는 성평등한 세상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전히 가부장적 편견에 기반한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꿈꾸는 성평등한 사회란 어떤 세상을 말하는 것인가. 성평등한 사회를 원한다고는 하지만 큰 차이와 간극을 지닌 채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도 차별받고 불평등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보다 평등한 세상을 지향한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제한되는 사회 구성원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세상은 단순히 남녀가 평등해지는 것뿐 아니라 성역할에서 오는 속박에서 벗어나 개개인으로서 존중되어지며 자아 실현과 개성 표현이 가능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향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성평등한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성평등한 사회가 어떠한 모습일지에 대해 더욱 열정적으로, 그리고 더욱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상상하고 움직이는 만큼 변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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