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개성공단 문제로 마주 앉았던 남북실무자회담의 장래가 아직도 불투명하다. 아무래도 북한은 대화를 할 마음이 애초부터 없으면서 제스처로 회담에 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 강대국들이 북핵 문제를 주요 이슈로 삼고 강도 높게 비판하자 이에 난처해진 입장을 잠시나마 호도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를 보면서 60년 전의 휴전회담은 어떠했나를 한 번쯤 다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북진통일'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유엔군과 공산군의 실무 대표들은 51년 7월 8일 개성에서 마주 앉았다. 북한의 남침 1년 만이다. 이때의 정경을 보면 공산권의 심리전이 얼마나 교묘하고 사악하고 끈질긴 것인가를 알 만할 것 같다.

우선 회담 장소의 선정부터가 교묘하다. 유엔군을 적진 깊숙한 곳 15km 정도를 유인해 온 듯한 감이 들 정도의 으슥한 장소를 선택하였다. 커다란 한옥 기와집으로 한때는 개성의 유명한 요정 래봉장 자리였다. 회담장 주변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을 에워싸듯이 배치하였다. 마치 여차 하면 총으로 갈겨 버릴 듯한 공포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공산군은 협상대표단을 수행하는 유엔군의 차량에 대해서는 백기를 달게 하였다. 유엔군은 마치 항복하러 가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런 다음 공산군 측은 이 사진을 찍어 언론에 배포하였다.

좌석 배치에 있어서도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하였다. 유엔군 측 대표가 우연히 남향으로 좌정을 하자 공산군 측은 자리를 바꾸어 앉자고 끈질기게 주장하였다. 유엔군 측은 그들이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바꾸어 앉기를 거절하였다. 나중에서야 비로소 유엔군 측은 공산군 측이 왜 자리를 바꾸어 앉기를 고집했는지를 들어 알게 되었다. 강자는 남면(南面)하고 약자는 북면(北面)한다는 사실을!

본 회담 때에는 더욱 가관이었다. 공산군 측은 남향의 높은 의자에 앉고 유엔군 측은 북향의 낮은 의자에 앉도록 좌석 배치를 하였다.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을 향해 고개를 들어 쳐다보도록 연출한 것이다. 이를 본 유엔군 측이 의자를 바꾸도록 요구하여 곧바로 바뀌기는 하였으나 유엔군 측의 초라한 모습은 이미 사진으로 형상화되어 언론에 나간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엔군 측이 회담장 탁자 위에 자그마한 유엔 기(旗)를 꽂아 놓자 공산군 측은 그보다도 10cm나 높은 북한 기를 올려 놓았다. 나중에는 경쟁적으로 높은 깃발을 올려 놓는 바람에 깃대가 천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휴회 중에도 신경전은 끊이지 않았다. 중무장한 공산군 측 경비원들이 유엔군 측 수행원들을 따라다니면서 총을 겨누는 시늉으로 협박하거나 눈을 부라리면서 공포심을 유발시키기를 예사로 하였다니 말이다.

이에 따라 의제에 대한 협의도 하지 못한 채 회담장의 분위기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회담은 이틀을 소비하였다. 회담 지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과 공포 분위기 해소 문제, 서방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의 허용 문제 같은 것이었다.

본 회담에서의 몰상식하고도 모욕적인 언사도 다반사였다. 한국 측 회담 대표인 백선엽 장군에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북한 측 대표인 이상조 소장이 종이 쪽지 한 장을 건네더라는 것이다. 그 쪽지에는 '제국주의의 주구(走狗)는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백 장군에게 "야, 너는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유엔군 조이(Joy) 대표에게는 아예 이름도 모르는 척 딴전을 피우면서 "이름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호칭하면서 상대의 약을 올리는 수법을 썼다.

이런 터무니없는 행패를 끝까지 참으면서 마침내 7월 27일 오전 10시에 휴전은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총성이 그 즉시 멈춘 것은 아니었다. 총성은 그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멈췄다. 6·25가 발발한 지 3년 1개월 2일 17시간 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는 정전에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로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우리는 북한과 휴전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휴전은 문자 그대로 휴전(armistice)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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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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